「체드론」골짜기-「실로에」 우물에서 「예루살렘」도시쪽으로 올라갈 것 같으면 유명한 「체드론」골짜기가 나타난다.
주위에는 잡목들이 많이 있고 요즈음엔「체드론」골짜기 양편으로 포장된 큰길들이 나있어서 그 옛날「체드론」 같지는 않지만 어찌되었든 아직도 한골짜기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데 그 주위에는 야곱과 자카리아 그리고 역시 구약의 성인 요사팟과 압살론의 무덤이 있다. 너무나도 낡은 돌로된 무덤인데 길옆에 있기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성모님의 무덤과「체드론」골짜기를 따라 곧장 올라오면 바른편이 곧「제세마니아」동산이고 그 산 아래쪽「체드론」골짜기의 연접하는 곳에 성모님의 무덤동굴 경당이 있다. 마침 우리가 그곳에 들어갔을땐「콥트」전례의 가톨릭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많은 신부 신학생들이 합동으로 미사를 오리는데 계속 향을 피우고 성가를 부르면서 장황하게 미사를 바치고 있었다.
물론 성모님은 육신채로 승천하셨지만 이곳이 처음으로 성모님의 거룩한 육신이 묻히신 곳이 된다.
『천주의 성모여,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
순례지를 돌아보고 호텔로 오는데 길을 잃어서 주춤 주춤하고 있으니 열두서너살 된 사내아이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 어느 호텔이냐구 묻길래 호텔 이름은 댔더니 너무나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과연 성지「예루살렘」의 애들은 다르구나 하고 감탄을 하는 참인데 호텔 옆에 와서는 뜻밖에 손을 내밀면서『기브미 섬 모니』 (돈 좀 주세요)한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마치 함정에 빠진 동물처럼 꼼짝하지 못하고 호주머니에서 잔돈 몇푼을 집어주면서 생각하기를 역시 성도「예루살렘」도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구나 생각하면서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
「예루살렘」의 옛 시가지를 걷노라면 마치 영화배우가 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고색 창연한 옛날 돌집, 곧 쓰러질듯한 이층집들, 길은 좁아졌다 넓어졌다 도시계획이란 전연없이 이루어진 도시. 가끔 반들반들하게 닳은 돌층 층대를 오르내리는 모습이란 마치 영화에서나 그림에서 만이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이곳 중심거리는 언제나 인파들이 득실득실하는데 그 중 과반수 이상은 전세계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순례객들이었다.
「조상을 팔아먹고 사는 이스라엘」이란 인상을 받는다. 길 양편에는 순례객을 노리는 선물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그 상가에는 어느 상점을 들어가봐도「로마」에서나 「루르드」에서 볼 수 있는 현대식 고상이라든지 현대식 묵조ㆍ성패는 볼 수 없고 옛날 전통적인 뭉툭한 고상, 성패들뿐이란 점에서 다시 한번 전통적인 옛성도「예루살렘」의 인상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유대인들만이 사는 구역, 아랍사람들이 사는 구역, 그리고 크리스챤들의 구역 또는 회교도들의 구역이 뚜렷했다. 유대인들이 집결해사는 구역에는 무언가 무게가 있고 깊이가 있으면서 부유한 느낌을 갖게되고, 아랍사람들의 구역에는 무언가 우중충한 느낌을 갖게된다. 특히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유대인들은 그렇게 더운 여름날씨에도 검은 양복에 검은 코트까지 걸치고 머리에는 검은 모자까지 쓰고 다니는 모습이란 역시 옛날 유대인다운 늠름한 모습이라 생각되고 아랍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초라하게 보였다. 특히 유대인 여성들의 모습은 매력이 있었다. 특별히 화장을 한 것도 아닌데 언제나 검은 스카트로 차린 모습은 마치 성모 마리아와 같이 엄숙하고 세련되고 무게가 있는 듯이 보여 퍽 인상적이었다. 물론「예루살렘」옛도시서 북쪽으로는 현대「예루살렘」이 한창 건설중에 있었고 역시 현대의 풍조가 스며든 고층건물의 현대식 도시었고 주로 「예루살렘」 거리를 활보하는 미니족속들은 또한 구미계통의 젊은 여성들이었다.
수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성도「예루살렘」 시내에는 갖가지 수도단체들, 갖가지 종류의 성당들이 즐비하게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성도로서 살아있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다.
예루살렘아! 너는 한때 천국의 상징이었었고 예루살렘아! 너는 한때 울음과 비탄의 상징이었고 예루살렘아! 너는 한때 구원의 상징이었고 예루살렘아! 너는 한때는 멸망의 상징이었지 않느냐? 오늘 저기 먼 극동의 작은 반도 한국이란 곳에서 보잘 것 없는 하나의 사제가 너의 품안에 안겨 있지 않느냐? 나에게 말을 해다오! <계속>
▲「고침」
지난 1월 31일자(752호)본지 4면「예루살렘 나그네」사진 설명중 「예루살렘」은 「베들레헴」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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