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일치운동은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그간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 과거처럼 두 교회의 차이점만 강조하던 일을 지양하고 일치점을 찾아서 이 세상안에서 참된 선교의 공동목표를 모색하다는 일은 사실 과거에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이러한 일치 운동을 향해서 움직이게 된데는 내적으로 성령의 역사와 외적으로는 급격히 변천하는 역사적 상황이라는 요소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일치운동이란 일반적으로 기대한 만큼 쉽고 안이한 것은 아니다 갈라진 두 교회가 분열의 상처를 씻어버리고 서로 일치점을 찾았다고 하지만 분열의 역사와 전통이 너무 오랬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서로 넘어서기 어려운 격차가 있음을 보게 된다.
다행히도 하느님은 우리 앞에 크고도 넓은 역사적 과제를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제를 푸는 일에서 후퇴할 수 없게 우리로 하여금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이다. 모든 난관 즉, 자연적인 여건이 가로놓여 있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류의 일치를 향해서 나아가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인류의 일치만이 인류의 구원을 성취한다.
이러한 대 전제하에서 일치운동을 해나가는데 두가지 난점이 있다. 이 문제는 71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오랜 시일을 두고 풀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첫째는,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두 교회의 교리적 차별이나 전통의 문제보다도 지리적ㆍ문화적인 차별속에서 자라난 두 교회가 그 자연적 여건안에서 생겨지는 제반 사회ㆍ정치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공통한 일치된 입장을 취할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현재 세계정세는 하나의 공동체로 향해서 움직이고 있지만, 그러나 아직도 지역내의 차별이 심화되어져 가고 있다. 특히 제3의 세계 안에서의 이러한 개별화는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다. 이러한 개별화가 심각해질수록 우리는 두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의 입장에서 여러가지 사회 문제를 다룰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둘째로, 화해와 비타협의 상층을 실지로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의 최고목표는 화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화해보다 비타협 특히 사회적인 불의, 사탄의 도전에 대해서 투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정말 이러한 경우에 두 교회가 함께 한 입장을 취하면서 비타협의 태세를 갖출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 둘째 문제이다.
앞으로 일년동안 한국에서 무슨 사회 문제가 생길는지 모른다. 그러한 경우에 두 교회가 진정으로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지고 움직일 때, 비로소 우리는 현실적인 일치를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일치운동이 단순한 전시효과를 바라는 행사로만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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