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자넨 잘난척만 하긴가? 자넬 도와주려고 열심히 애쓰고 있는 우릴 비웃는거야? 뭐야!』
『내 말 좀 들어봐…』
『다음에 하자, 자네 얘긴 다음에 듣겠어. 오늘 저녁은 안돼! 』
『신부님…』마드레느가 옆에서 안타까워 한다.
『마드레느는 이 사람에게 마련해줄 일자리라도 있소? 난 없어』
『난 생각하길…』미쉘이 애써 말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피에르의 마음은 이 순간 딴곳에 가 있다.
(로제! 지금 죽어가고 있겠지… 이 순간에 어쩌면 죽었을지도… 고백성사를 줄 생각을 할걸 병원생각만 했군… 「싸니」의 본당신부라면 고백성사를 줄 생각을 곧 했겠지…)
『오늘 저녁은 안되겠어 미쉘! 다음에 오게! 나도 모르겠어 왜 이런지. 곧 한번 찾아오게. 그러나 오늘 저녁만은 날 조용히 놔둬주게』
미쉘은 팽돌아서 나가버렸다. 피에르는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마드레느, 난 로제를 생각하고 있소』
『난 미쉘을 생각해요』
그녀의 어조가 몹시 엄격했다.
『아니…』
『죽은 사람은 내버려둬요. 난 미쉘은 생각해요. 신부님 잘못하셨어요… 내 생각엔 신부님이 잘못하신것 같아요』
『다시 오겠지… 그리고 그 사람은 무농자야, 이런 종
류의 사람들은 우리시간만 낭비시키고…』
『다신 오지 않을거예요. 신부님은 담뇨사건을 벌써 잊으셨어요?』
피에르는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미쉘, 여보게 미쉘 어디있나? 미쉘? 』
그는 큰길까지 뛰어나가 불렀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미쉘은 집에 돌아가겠지, 그리고 나면… 아니다. 오늘 저녁만은 자기 마누라의 눈총을 견딜만큼 강하지 못할거다. 너무나 마음의 상처가 컸으니까. 거리를 헤매고 있겠지? 어떤 거리를 헤매는지?)
피에르는 이리저리 숨이 차도록 찾아다녔다…. (마드레느라면 찾아냈을 거다)
그는 집으로 힘없이 발길을 돌리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사랑할뿐 아니라 의욕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문짝위에 커다랗게 쓰여진「평화만세」라는 글자가 오랜 소낙비에 거의 지워져 있었다.
그렇다. 오늘 저녁 피에르 신부에게는 평화가 없어졌다. 집에서는 마드레느가 제단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은 미사를 드리지 못하겠소. 난 미사드릴 자격이 없어요…』
『미쉘은 다시 오겠지요』
마드레느는 부드럽게 위로했다.
다음주에 정말 미쉘이 돌아왔다. 목요회에 모이는 친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을 때였다. 피에르는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옆에 와 앉게 미쉘』
『난 앉지 않겠소. 할 얘기가 있는데…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말하겠소』
사람들은 식사하던 손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미쉘은 고개를 숙였다. 마드레느는 굳어진채 그를 뚫어지게 바라고 있었다.
『요새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소. 나 혼자서… 혼자선 바보짓만 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별수 없었소. 마누라와 애들을 먹여살려야 할것 아니오? 그리고 결국 나라는 인간은 그런일 밖에는 할수 없는 놈이고!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요?』
『이런 일이라는게 뭐예요. 미쉘』마드레느가 물었다.
『오늘 오후에 서명을 했소. 난 기동경찰대에 들어갔소. 이 말을 하러왔소…』 그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좌중을 돌아보았다. 모두 돌처럼 굳어졌다.
『이봐, 미쉘…』 피에르가 입을 열려고 하자 루이가 가로막았다.
『그만두게 신부, 길게 말할 필요 없어. 한마디도 할 필요없네. 천해져. 우리는 노동자고 친구였던 미쉘은 반대편으로 넘어갔을 뿐이야. 그것은 이해하겠어. 원망도 하지않고.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어』
『모두들 악수해주게』 미쉘이 갑자기 요청했다.
그는 식탁을 한바퀴 돌았다. 한사람씩 그의 손을 잡았다. 말 한마디 없이… 피에르는 몹시 창백했다.
마드레느만이 미쉘의 뺨에 키쓰를 했다.
그가 떠난후 그녀는 미쉘이 눈물로 적신 자기 얼굴을 손등으로 닦았다.
Ⅶ
삼월이 오자「싸니」 거리에는 훈훈한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하여 혈맥이 통하기 시작했다. 나무들은 눈을 뜨듯 잎이 싹트기 시작하고 집들은 어두컴컴 하던 움막집 모습을 벗어버렸다. 「싸니」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속에 회복기에 들어선듯 했다. 겨울에는 입김을 뿜으며 거닐던 행인들도 또 다시 걸음걸이가 가벼워졌으며 멀리서도 햇볕속에 정다운 인사를 나눌수 있는 여유를 보였다. 변함없는 태양도 사람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늦게지게 되었다. 이제는 어두울때 일어나 덧문들이 닫치고 쓰레기차가 아직 지나가지 않은 희미한 가로등밑을 걸어 공장에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이젠 죽은 사람같이 핏기없는 얼굴에 불안한 눈초리가 아닌 참된 인간의 얼굴을 찾아 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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