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돈암동성당 지하실 8평 남짓한 교실에 오후 7시가 가까워오면 「뱃지」없는 교복이지만 단정히 차려입은 소년 소녀들이 저마다 책가방을 들고 모여든다.
방가운데 놓은 연탄난로를 에워싸고 저마다 낮에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화제삼아 몸을 녹이고 나면 곧 수업이 시작된다.
낮의 피로를 잊은듯 초롱초롱 빛나는 눈들이 칠판을 주시하며 선생님 말씀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세운다. 엘로우선 고등학교-고등공민학교라 이름 붙이기에도 보잘것 없는 조그만 배움터지만 이 안에 모인 학생들이나 선생들에겐 더없는 보람을 안겨주는 보금자리다.
2년 전인 69년 5월 어느날 JOC 돈암동「팀」일반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JOC 활동원칙인 관찰ㆍ판단ㆍ실천방법에 따라 한주간의 회원활동평가가 끝나자 한 회원이 일어나 말했다. 『우리 본당 지역엔 집안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 못하고 구두닦이, 사환, 방직공장 직공 등으로 몇푼 안되는 임금에 매여 배워야 할 때를 놓친 불우한 소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
이 제안이 동기가 되어 중학과정을 가르치는 공민학교를 열 준비를 시작했다.
본당신부(김정수ㆍ레오)는 장소를 쾌히 제공했고 본당내 젊은대학생들이 저마다 한 과목씩 맡겠다고 나섰다.
JOC 회원들은 그들위에 있는 불우한 소년 소녀들을 데려왔다.
그 해 6월 5일 첫수업을 시작했다. 무려 2백12명이 좁은방이 터지도록 모여들었다.
지대식(시몬ㆍ28=수도학원 강사)씨를 중심으로 본당의 젊은이들이 주동이 되어 일년을 계속해오는 동안 숱한 난관이 따랐다.
낮에 일하고 밤에 몇시간씩 공부해야 하는 고달픔 때문에 한둘씩 떨어져 나갔다.
혹은 부모의 몰이해로 잘나오던 학생이 소식도 없이 결석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창신동 산꼭대기 판자촌을 헤매어 학생의 부모를 찾아 설득을 해야만 했다.
교재도 책상도 부족했다. 그래도 배워야 한다는 일념과 이들을 정상인으로 성장토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이 보잘것 없는 학교를 유지시켜온 원동력이었다.
지난해 6월 27일 이 중 27명이 1년과정을 마치고 졸업했다.
10명이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하교에 합격하던 날 선생과 학생은 붙들고 한바탕 울지 않을수 없었다.
너무 대견한 보람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가난한 집안들이다. 입학금을 낼 힘이 없었다.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본당 유지들을 찾아 사정을 호소했다. 며칠동안 5만4천여원을 거둘수 있었다.
지금은 62명(남4ㆍ여58)이 재학중이다. 『제가 가난하게 공부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들 사정을 잘 이해했고 틈나는대로 돌아보았을 뿐입니다』지대식씨는 겸손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 학교를 이끌어온 그의 성실한 인간됨과 열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실업교육을 실시하고 싶은데 교재가 없습니다. 지난 구정에 복조리장사로 대형 주판(珠板) 하나는 마련했지만 필요한게 너무 많군요』
가르치는 사람의 욕심은 커지게 마련이라면서 소박하게 생긴 얼굴을 붉힌다
그는 하루에 6시간씩 학원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학생보다 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녁에 성당을 들어서면『선생님』하고 반기는 천진스런 얼굴들 때문에 피로를 잊고 또 칠판앞에 설 힘을 얻는다고 한다. <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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