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사하기 위하여 예물과 희생을 바치도록 하느님과 관계된 일로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되어 사람들을 대신하여 선정된 사제(헤브아서5ㆍ1)는 마치「우리 안」의 형제들과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우리 밖」의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생활한다.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에는 세상 형제들과 이렇게 살기를 지시하고 있다. 사제직에 대한 교의적인 기조를 구태어 여기서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신부들이 제의실 안에서만 머물러있지 말고 자기가 생활하고 있는 사회안에 진출하고 사람들과 접촉해야 된다는 것이다.
사회속의 사제
이상하게도 과거 수세계동안은 같은 성경구절인 헤브레아서 5장1절을 인용하면서『사제는 자기가 이 세상 바깥에 존재하는 별개의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TㆍTRONSON TRAITEDES SAINTS ORDRES, PARSI1953)고 주장하며 사제는 세속적인 것과는 관계를 갖지 말것이고 다만 하느님과의 관계에 전념하도록 강조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위해 자아라는 껍질을 탈피하지 않고 어떻게 명분을 세울것인가? 지금까지의 사제의 생활이란 특히 한국의 경우에서는 사제가 나가서 잃어버린 양을 찾기는 커녕「우리 안의 양」들에게도 그들의 요구에 만족스럽게 응해주는 수가 드물지 않는가? 먼저 우리 일선에서 사목을 담당하고 있는 사제들은 그리스도 신자위에 선 것이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생활해야 한다. 마치 주교가 전교회에 대해서 보편적 사명을 가지는 것과 같이 사제는 자기가 맡고있는 본당에 속한 양들만이 아니라 본당구역 내에 살고있는 모든 형제들에게 보편적 사명을 가져야만 한다.
사제는 또한 사도적 이유만을 위해서 다른 형제들과 접하는 것이 아니다. 사제가 사회와 접촉하는 것은 사제의 임무를 보다 잘 이해하고 자기 직무에 대한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다. 사실상 세상의 많은 사건들은 사제들로 하여금 자기의 임무가 무엇이라는 것을 잘 설명해주고 또한 사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 그리스도의 참다운 상이 드러나기도 한다.
양들에 봉사하는 사제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되어 사람을 대신해서 선정된 사제』는 자기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형제들의 죄까지도 보속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만사에 있어 형제들과 같이 되셨고, 하느님 앞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악을 보속하시기 위해 불쌍한 죄인의 형태로 세상에 탄생하신 것이다.
고통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고통받는 사람을 모른다.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간택된 사제는 모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특히 현재의 사제들은 비록 어떤 의미에서 선택되기는 했으나 하느님의 백성이나 어떤 인간에게서 분리되어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에 온전히 헌신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이해없이 봉사못해
사제는 세상생활과 다른 영원한 생명의 증인이 되고 관리자가 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사제라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형제들의 생활과 그 생활조건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면 어떻게 절박한 상태에 있는 형제들에게 봉사할 수 있을 것인가? 사제의 직무 자체는 사제들이 세속을 닮아서는 안된다고 할 천적적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사제가 세속에서 형제들 가운데서 생활하며 착한 목자로서 자기 양을 알고 또 같은 우리에 속하지 않는 양들도 그리스도께 인도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고도의 신적인 덕행론보다도 인간사회에서도 당연히 높이 평가되는 착한 마음씨, 진실함, 불타는 정의감, 겸손, 친절, 정신의 강직함 등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간으로서 신을 증거
『신부를 믿다보니 어느 틈에 천주를 믿고 있더라』고. 이 말은 새로 영세받은 신자가 자기 친구에게 한 말이다. 이 말 가운데 본당 신부들이 깨달아야 할 무한한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사제는 신이 아니다. 인간인 사제가 신을 증거하려는 것이다. 신을 증거하기 전에「사제인 인간」이 신을 모르는 형제에게 우선「신부도 그들과 꼭같은 인간」으로 서로 친밀해질수 사제인「네 인간」을 믿으리라.
우리 사제들은 흔히 모순된 생활을 많이 한다. 우리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하려는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더높은 곳에 머물고 본당 독반사항에는 자기위주의 언행으로 신자들을 실망시킬 때가 많다. 우리들에게 맡겨진 양은「내 양」이 아니라「그리스도의 양」이다. 내게 맡긴 양을 어떻게 내 위주로 다스릴 것인가? 우리 일선사제들의 사명은 신자와 신자들의 편리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는「노예의 형태」까지라도 빌어 강생하신 것과 같이 겸손한 태도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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