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색채 소개 전체적으로 짙은 색깔로 장중한 느낌을주는 그림이다. 예수의 온몸은 검 붉은 색이며 모든 지체의 윤곽은 짙은 검정색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온몸에 가느다랗게 혹은 굵게 흐르고 있는 피는 선명하다.
뒷배경은 짙은 푸른색과 검정색으로 그려졌으나 붉은태양과 저편 바다 위에 떠있는 듯한 먹구름 주위에는 노랑색과 연두색이 섞여서 밝은 느낌을 준다.
(역자ㆍ주)
루-오의 그리스도는「ECCE HOMO!-보라, 이 사람을!」하고 빌라도가 가리키며 말하던 바로 고통을 받으신 구속자이시다.
루-오는 오랫동안 죄를 마치 세상을 좀먹는 나병처럼 두려워 했었다. 그는 과연 하느님의 아들이 온 인류를 위해서 받으신 고통의 의미를 잘 알수 있었을 뿐만아니라 가장 불완전함과 상실속에서 하느님의 빛으로부터 희미한 빛을 볼수 있어야 함을 역시 잘 깨달았다. 『원수이거나 감사할줄 모르거나 또는 순결치 못한 피조물의 심혼에도 예수는 살고 계신다』이렇게 화가는 죄와 보복의 조롱을 받으시는 예수를 그렸다.
우리 눈에는 그리스도께서 이 고통의 성화에서-발가벗고 계시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눈을 들고 그를 바라볼 때 그는 아무런 아름다움의 형상을 갖고있지 않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배신을 당했으며 우리와는 비교하지 못할만큼 또 감히 그이 앞에서 얼굴을 못들만큼 그는 질병과 고통에 시달렸다.
그의 주위에 있는 고해(苦海)는 마치 사진을 안에 짜넣은 양 그를 둘러싸고 있다. 또 이 성화에서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세상의 고통을 하나로 보고 있다.
모든 것이 그분 안에서 흐르고 있다. 그분이 바로 또한 고통을 받는 자들의 피난처이시다. 그가 서있는 곳은 항구쪽이다. 어둔밤과 세상과 고통과 악의한 가운데 그분은 서 계신다. 이런 것들이 점점 그에게로 엄습하여 왔다. 마침내 이것들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고 그들의 죄악(바다)속으로 이끌어 넣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속죄의 제물로 만드셨다』(코린토 후서 5장21절) 우리는 오직 그의 몸둥이만을 볼수있을뿐 발은 볼수 없다. 이것이 바로 희미하나마 최종적인 구속의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즉 그분이 우리 세상(흙)에「파묻혔다」는 것을? 다시는 그곳에서부터 해방될수 없도록 그들의 운명이 이제는 그의 운명이 되고 그들의 고통이 바로 자신의 고통이 된듯 단단히 뿌리를 박은채 땅위에 서 있음이! 과연 그는 이 세상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역시 이 세상(흙)의 한부분이신 것이다. 『이제 그는 세상의 역사를 바라보시지만 않고 오히려 우리가 관심을 갖거나 기대하는 것처럼 그분 자신도 이 세상에 관심을 가지신다. 이제 우리의 모든지상(地上)의 기쁨과 고통들이 그분의 어깨위에 놓여진 것이다』(칼 라너) 그러나 그분은 오직 이러한 방법으로만 구원하실수 있었다. 이 성화에서 나타나는 모든것 즉 세상 빛 그리고 항구가 그분과 관계를 갖고있다. 태양은 피처럼 붉은빛깔로 그려졌다. 붉은빛깔의 실개천과 그를 괴롭히는 인간의고통이 그리스도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그 냇물은 그에게로 향해 흐르고 있을뿐 아니라 깊이 깊이 그이 안으로 흐르고 있다. 그의 왕관은 가시관이고 그 이마를 위한 장식품은 붉은 피빛으로 만들어진 관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인간과 동일화 시키신 것이다. 즉 그의 비애 인내 허약 그리고 사랑을! 이것들은 오히려 이 세상에서 허약한 자의 힘이다. 어둠속에서부터 신비스러운 빛이 흘러나오고 있다. 어두움속에서부터-거의 깊은 밤중-신비스러운 광채-태양-가 흘러나오고 있다. 아무도 이 빛을 그냥 지나쳐 볼수는 없다. 이 태양 아래에는 아주 실신하고 가련한 자가 서있다. 그러나 그는 태양 빛에 환하게 비추어 지고 있다. 여기 서 있는 사람은『나는 마지막으로 죽기까지 순종했다』고 나에게 말하고 있다. 누구나 거절할수 있지만 거절한다는 것은 역시 쉬운일이 아니다. 과연 고요 속에서 어떤 내적 부름에 우리의 처해있는 환경이나 사실들을 생각치않고 인내롭게 순종할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누가 그의 고통이나 수난을 그리스도의 손으로부터 받아 감수 인내한다면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어전을 빛나게 하는 것이다.
저편에 있는 노랑빛의 바닷가는 새날의 부활날의 상징이다. 이 성화의 인간 그리스도의 빈약성과 고귀성은 표현키 어려우나 잘 조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위에서부터 -태양으로부터-이세상에 내려오는 빛은 이 세상의 공간을 무너뜨린다. 이제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살고 계신다.
죠지 루-오(1871~1958)는 20세때에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여러해동안 위기와 고통과 삶에 대한 공포를 체험한 후에 그에게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내 나이 30이 가까워오자 나는 번개불을 혹은 은총의 빛을 받았다. 세상을 보는 내 시야가 변한 것이다』루-오의 예술은 행복이 아니고 참된 삶의 문제점들을 제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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