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가 말을 건네면 쟝은 곧 피해 달아났다. 이번에도 대주교에게 함께 가기를 권하자 쟝은 거절했다.
『내가 설 자리가 못돼서…』
『아무데라도 다 자네가 설 자리야』
『내 설 자리가 아무데도 없다는걸 이젠 나도 알아요』
『쟝! 다음주일에 영세할까? 』
『아직 안돼. 아직 다 이해를 못해서』
『막 태어나는 아이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나? 』
『글쎄 내가 이젠 어린아이가 못된단 말이오』
그의 초록눈빛이 번쩍였다. 목뼈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고통스런 이 표정. 『쟝!』
피에르는 후회에 가까운 고통을 가슴에 느꼈다. 상대방은 획 돌아서 가버렸다.
그들 다섯사람과 피에르는 지하철에 서 나오면서 길을 찾아야했다. 방향을 잡을 수 없고 어쩐지 거북하기만 했다. 주교관 길로 들어서자 갑자기 적막한 분위기가 그들을 감싸 어쩐지 무슨 흉계에 빠진것 같은 언짢은 기분이었다. 목소리가 자연히 낮아지고 그들 중 몇사람은 주머니속에 두손을 찔러넣었다. 경계하는 몸짓이다. 우뚝 서 있는 건물들의 벽을 바라보았다. 성벽보다도 더 두터운 벽. 정원 울타리가 뾰족뾰족 올라간데 담장잎의 새싹이 파릇파릇하다.
『자네 주교는「싸니」에서 살걸 잘못했어! 』
신자라는 친구가 입맛쓴듯 내뱉는다.
『별소릴 다하네! 좋은 집이 생기면 거기서 살아야지! 』
피에르의 대답이다. 주교관에 이르자 피에르는「싸니」에서 온 것을 말하며 신부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일개 노동자의 자격으로 면회를 청했다. 그들은 검은 판자와 붉은 비로드로 장식한 큰방에 인도되었다.
마루가 무척 번쩍거렸다. 벽에는 과거의「빠리」주교들의 사진이 여섯장, 액자속에서 미소짓고 있어 마치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듯 했다.
엄청나게 큰책상에서 일을하고 있던 나이 지긋한 신부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제 들어선 그들 한사람 한사람과 악수를 나누었다.
추기경 각하를 만나겠다고? 동맹파업 관계로? 물론 자기는 알고있다는 것이다.
벌써 그 사건때문에 다녀간 사람은 그들이 처음이 아니니까….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기업주들이 우리보다 먼저 다녀갔겠지요』
피에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다른 노동자들도 다녀간 것이 사실이고. 그런데 추기경 각하는 몹시 피로하셔서…병이 드신건 아니지만 정말 너무 피로하셔서…의사가 면회를 금지하고있는 처지라…자기가 대신 용건을 전해드릴수 없는지? 마찬가지라고 할수 없지만 그래도…
하여간 각하를 뵈옵고 말씀은 드리겠지만…
늙은 신부는 방을 나가 어두운 복도속으로 사라졌다.
노동자들은 실망한 눈초리로 피에르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무척 창백했다. 그는 입을 벌린채 건너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친구들도 그쪽으로 시선을 들렸다. 그때 저쪽에서 문이 하나 열리더니 추기경이 나타났다. 피빛깔의 옷을 두른 대리석상 같았다. 푸른하늘색의 두 눈만이 눈같이 흰 얼굴에서 생기를 띠고 있었다. 그들은 그 눈길에서 무한한 사랑을 느낄수 있었다. 두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나가더니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추기경의 손이 올라가더니 성호를 그었다. 다른 추기경의 초상화들은 모두 그에게 시선을 돌린듯 했다. 그의 두 눈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창백하고 마른 이 늙은이가 우리의 아버지인 것이다.
추기경은 앞으로 걸어나오며 한사람 한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피에르만이 그의 손가락에 낀지환에 친구를 했다. 추기경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에르 신부, 주일부터 자네가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었소. 만일 오지 않았다면 내가「싸니」에 갔을거요…』
『또 오실뻔 하셨습니다. 추기경님! 』얼굴이 약간붉은 빛을 띠우더니 미소가 스쳐갔다.
『그렇소』
「싸니」친구들이 이 목소리를 듣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으나 길이 기억에 남을 목소리였다. 그렇게 부드럽고도 엄격한 목소리, 믿음직한 그목소리, 어린시절의 향수처럼 약간 사투리가 섞인어조.
『추기경님 죄송합니다. 피로하시다는 말씀을 듣고도…』
피에르 신부가 사과를 드렸다.
『당신들은 피로하지 않고? 』
『그러나 우리야 뭐…』
『그런 말은 말고 파업얘기나 빨리 합시다. 그래 어떻게 지탕할 계획이오? 』
『동조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일을 아직 하고있는 친구들이 월급의 일부분을 내놓는 겁니다. 파업이 오래 계속되면 우리를 이해하는 농가에 가서 식량을 얻을 생각입니다. 공동 취사장도 만들것입니다…그밖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추기경님, 우리는 꼭 관철해야 합니다. 저희들의요구가 정당하기 때문에! 』
『쎄느ㆍ에ㆍ마르느…메이엔느…엥드르ㆍ에ㆍ로와드…이런 지역에서는 잘 도와줄테니 모금을 할 때 생각해 두도록. 내가 모든 사정을 잘 파악하게 되면 주교들에게 편지를 쓰겠소. 』
『추기경님, 우리한데 필요한 것은 특히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파업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배를 곯고는 살 수 있어도 외롭게 이해받지 못하고는 살수없습니다. 』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