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직의 본질을 여기서 구태어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믿는다.
다만 한번 더 정의함으로써 과연 사제란 무엇이며 양들이 바라고 있는 사제는 어떠해야 할것인가를 말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의 사명은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데만 그치지 않고 만민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알게하고(교도권) 만민을 다스리는(사목권)데에 있다. 고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선정된 사제들은 신품성사로써 이상 두「권」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두 권중의 하나인 사목에 대한 것이다.
양들을 아는 목자
①예수께서『나는 너희 스승이로다』『나는 착한 목자로다』고 하시면서 당신 사명을 밝히시고 제자들에게는『너희는 만민을 가르치라』『너희는 내 양을 치라』하시면서 그리스도 자신의 사명을 제자들에게 맡기셨다. 예수님은 비할수 없이 높으신 스승이요 그칠 수 없는 스승이시며 양떼에 대하여는 절대의 권력을 가지신 목자이시나 세상 사람들이 어떠한 스승을 원하며 어떠한 목자를 요구하는지 잘 알으셨기 때문에 스승의 존고한 지위대신 자비심과 온정으로써 교육방침을 삼으셨고 목자의 절대권 행사 대신 겸손과 인내와 검소로써 사목의 방법을 삼으셨다. 즉 예수께서 그리하셨다면 그 대리자인 사제도 뒷 발자취를 따라야 할것이 오늘 과거에는 이러한 사제상을 벗어나서「독선과 자만」으로 뽐내려 하고「강압과 무리와 천대」로 사목권을 행사하려는 경향이 없지않았다.
유교 윤리관을 오용
②또한 우리나라 사제들은 유교의 윤리인 군사부일체정신을 오용하여 봉건적사상에 치우쳐 참된 사제직의 근본정신을 망각한 일도 없지 않았다. 특히 우리 선조들이 교회 초창기에 한사람의 사제도 없이 북경주의에게 사제 보내주기를 애타게 부르짖었으나 그 반세기동안(한때 잠깐 사제 한분이 계셨으나 숨어있다가 순교하였음) 사제 갈망증에 걸리다시피 했다가 외국사제들이 나오게됨에 위에서 말한 유교의 윤리적 관념과 겸비한 신앙심에서 사제직의 존귀함과 필요가치에만 치중하여 그 사제들을 마치 그리스도와 같이 최상의 존경과 절대적 복종으로 떠바치게 된 것이 지금까지 유풍이 되고 인습이 되어왔다.
존경을 강요못해
③물론 사제직의 존귀함은 존경과 숭앙의 대상이요 사목권은 권위와 명령의 대상이지만 이것은 사제를 대하는 상대방이 취할 의무이지 결코 사제 자신이 그 존경과 숭앙을 스스로 바라고 권위와 명령에만 골돌한다면 이것은 만민을 위하여 있는 사제라기보다 자만과 독재의 우상뿐일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흔히 신자들이 하는 말로『신부님은 안그러셔도 됩니다』하기도 하고 또는 신자로서 목자를 존경해서『우리는 이래도 되지만 신부님이야 우리 지도자가 아닙니까』하는것이다.
이러한 말들을 받아들이는 쪽에서는『의당히 우리는 이쯤 대우를 받아야지』한다면 목자로서 자기위치를 망각하고 하는 생각일 것이다.
때로 인간의 기본인격에 어긋나는 언행을 감행하면서도 그것이 양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마저 해보려하지 않는다. 사도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시며 하신『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내 표양을 보고 너희도 서로 이렇게 하라』는 말씀의 뜻을 본받는다면 감히 어떤 양이 사제들을 안 따르겠는가?
양들은 목자본받아
④양들은 목자를 본받는다. 그리고 양들은 목자를 지켜본다. 사회를 알아야 사목을 하지만 그것을 핑계로 과도한 속화론이 떠들게 되는 것도 양들의 눈에는 언짢게 보인다고 한다.
비록 세상이 달라진다 하더라고『신부님들은 안 변해 주었으면』하는 반면에『이젠 신부님들도 과감히 사회 참여에 앞장을 서 달라』는 것이 양들의 부탁이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지는 사제직에 대한 깊은 사명감과 선의의 노력이 가르쳐 줄 것이다. 그 선의속에는 변천해나가는 이 세상을 주시하며 계속적인 연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실생활면에서도 수단을 입고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혼자기도 하고 있는 모습도『이제는 찾아볼수 없는 아쉬움』이라 한다.
사제없는 성당은 마치「주인없는 옛 궁터」와같이 쓸쓸하기만 하단다.
바람직한 사제상
⑤결국 양들이 원하는 것은 비록 자신들은 죄속에 살더라도『신부님들은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하게 잘해주었으면』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나는 존경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들에게 봉사하러 왔노라 너희가 만일 서로 사랑하면 모든 이가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 되는줄을 알리라』고 하시었다. 그러므로 만민이 원하고 요구하는 사제상은 온순과 자비 겸손과 검소로써 그리스도를 본받는 그 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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