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넨벨그 신부는 공의회후 화란 신학계에 세가지 경향이 식별된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휴매니즘으로 인간학적 관심에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과 윤리적 문제, 특히 메크로적 윤리학의 문제가 신학자에겐 차차 중요한 문제로 되어있다.
이곳 대학교의 신학생들은 평화, 혁명, 제삼 세계에 대한 연구 논문을 점점 더 많이 쓰게될 것이다』
제이의 경향은『어떤 류의 실용주의와 교회사회학의 관심이다』이것이 화란 사목공의회 전회기의「실제상의」주제였다고 동신부는 말한다.
1970년 1월의 전체회의에서 이 공의회는 결혼한 사제에게도 사제직 수행을 허락할 것과 사제서품에 독신서원을 요구하지 않을 것을 권고하여「로마」를 놀라게 했다.
제삼의 경향은 언어문제에의 관심이다.
『이것은「앵글로 색손」계의 영향에 치우치는 일이 많다. 화란은 문명의 십자로다. 다른 곳에서는 학생들만이 신학에 관심을 갖지만은 여기서는 인텔리 전체가 신학에 관심을 갖는다』라고 슈넨벨그 신부는 결론지었다. 』
◇큰 위기◇
화란가톨릭 신자의 변화는 특히 신학면에 현저하게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이론보다도 행동에 집중한다. 그들 중 한사람으로서 H. 회프나겔스 신부는 세계교회 액숀단체의 지도자라고 자칭하고 있다.
그는 니메겡대학의 사회학교수며 독일과 프랑스에서 교편을 잡고있다.
회프나겔스 신부는 화란교회가 현재『큰위기속에 허덕이고 있다』고 보며 그 위기는「종교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평하면서 교회 출석자수의 급감을 지적했다.
1969년 10월 통계에는 전국 신자중의 겨우 51.5%가 주일미사에 참석했다(3년 전에는 64.4%였다)『6~7년 전에 세운 교회가 현재의 신자에겐 너무 크다. 이곳 니메겡대학교에서도 소수의 학생만이 교회에 나가고 있다 』
宗敎의 본질이 교회에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同신부는 인정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미 종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사제지망 청년들의 수는 격감하고 있다.
니메겡 대학의 모든학부에서 학생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신학부만은 작년보다 3분의 1로 줄었다. 』화란에서 1965년에 30명의 사제가 성직을 떠났고, 1967년엔 1백45명, 69년엔 2백3명 70년엔 전반기만 1백80명으로 되어있다. (현재 사제 총수는 1만2천7백84명이다. )
『나는 사제결혼을 찬성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것을 필요한 실험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것이 다시 많은 사람들을 사제로 만드는 근본적인 수단이 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라고 슈넨벨그 신부는 말했다.
화란 교회가 당하는 위기의 핵심은「그리스도에 대한 의식의 상실」이라고 同신부는 말한다. 그러면 교황 수위권은 2차적인 문제인가『그렇게 말해도 좋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오신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라고 그는 대답했다.
『나의 명제(그리고 많은사람의 명제)는 교회와의 계약 결렬이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와의 계약 결렬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화란교회와 모든 교회와의 교제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거기 교황의 문제가 있다. 』
바티깐에서도 화란교회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관심이 깊다. 『화란에 대해 우리는 겸허할지이다. 』라고 성청의 한 관리는 말했다. 『우리는 판단에 신중을 기할일이다. 화란사람들은 탐구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이 탐구가 화란 교회를 어디로 인도할 것인가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