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사제들은 신품성사로서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서 하느님의 백성을 위하여 필요하고 또 가장 고귀한 임무를 수행하지만 성세의 샘에서 재생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사제도 같은 형제이며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그리스도 신비체 건설의 사명을 다해야할 책임을 지고있다.
사제도 주의 제자
사제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계승받고 교회안에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실천하기 위해서 불리운「주의 제자」인 것이다.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해 양들에 대해서 사부(師父)로서의 관계는 항상「형제적인」관계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제들은 무엇보다 먼저 양들을 형제로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이유는 사제들도 신자와 같이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하느님의 자녀이고 성신의 궁전이기 때문이다.
사제의 신분은 결코 신자들보다 훌륭한 계급에 속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제들은 신자들의 형제로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될것이고 또한 마음 깊이 이 사실을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동시에 사제들은 아버지와 스승이 되기도 하지마는 그것은 신분적으로 아버지나 스승이 된 것은 아니다. 하느님만이 유일의 아버지요 스승인 것이다. 다만 사제들은 하느님의 생명을 신자들로 하여금 얻게하고 보다 편이하게 얻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이다.
권위는 봉사위해
이상 관계에 있어 사제가 공동체의 지도자로서「위에 선 사람으로서」가지는 권위는 봉사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봉사하러 오셨고 많은 사람들의 증인으로서 자기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마태오20ㆍ28) 스승이요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봉사적 권위」혹은「위계적 봉사」로 알아들어야 할것이다.
그리스도 신비체 전체는 「봉사의 증인」이어야 한다.
동시에 거룩하고 사제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은 무질서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聖意)에 의해서 조직되어 있다.
목자와 양들은 서로가 서로의 품위와 교회에 있어서의 고유의 역할을 인정해야 된다. 모든 사람이 누리는 정당한 자유를 존중하고 각 개인이 가진 경험과 능력 카리스마를 인정해야 하고 서로 신뢰를 가지고 맡겨야 한다.
서로의 인격 존중해야
여기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양과 목자는 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다. 선장과 선원이 서로의 경험과 능력을 인정못하고 품위와 인격을 인정 못한다면 서로가 가진 고유의 사명인들 원만히 수행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하면서도 어떻게 험한 세파에 시달리며 목적한바 항구에 무사히 도달하리라 바랄수 있겠는가. 우리는 한 배에 탄 같은 형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즉 목자와 양들은 보다깊은 뜻에서의 공통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
공통체란 거기에 속해 있는 모든 성원(成員)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방법을 가지고 같은 책임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가져야 한다. 성원 한 사람의 자랑은 공동체 전체의 자랑이어야 하며 한 사람의 잘못을 모두가 애석하게 여길줄 알아야 하며 같이 용서해야 한다.
잘 잘못은 공동책임
그렇다면 우리는 한번 반성해보자. 과연 우리는 같은 그리스도 신비체의 성원으로서 서로 아껴주고 사랑해 주었는가? 보이는 형제를 생각하지 못했다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어떻게 믿고 사랑하겠는가? 형제의 작은 잘못을 용서못한다면 네 큰 잘못은 누구한테서 용서받으려는가? 서로 믿음과 사랑으로서 결합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제여, 그대는 얼마나한 자부적인 사랑과 신뢰로써 신자들을 대했기에 신자들의 작은 잘못에도 분노하는가? 신자여 그대는 사제들의 고통을 얼마나 도왔고 교회사업에 얼마나 협조했다고 그대의 목자인 사제에게『좀 더 혹은 조금만 더』하고 바라기만 하는가?
옳은 목자는 양들을 위해 생명까지라도 버려야 하겠지마는 교회가 마치 사제들만의 것인양 버려두고 신자는 혜택만 입으려는 태도도 지양되어야 하겠다.
사랑과 신뢰의 관계
『사제는 주교의 이름으로 돌보는 공동선을 수호하는 사람이며…특히 성사를 받지 않는 사람들, 더욱이 신앙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으 특별히 돌보아 줄것이며 착한목자로서 그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한편 신자들은 목자이며 아버지인 사제들을 자녀다운 사랑으로 받들며 또한 사제들이 당하는 곤란을 보다 쉽게 극복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그 직책을 완수할 수 있도록 그들의 걱정을 나누며 기도와 활동으로 할 수 있는데까지 그들을 도와야 한다』(PRESBYTERORUM ORDINIS 2장2절9호) 아무도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거와 같이 스스로 완성시키지도 못한다. 오직 서로가 도움으로써만이 진정한 존재의의를 찾고 진정한 완성이 가능하게 된다. 이와 같이 원리는 공동체적인 존재로 태어난 인간
의 운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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