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감리교의 교조인 요하 웨슬레 선생은『세계는 나의 교구이다』라고 말한적이 있고 이 글은 영국「런던」에 있는 그의 동상 비문에도 기록되어 있다. 에큐메니칼 운동이란 세계교회 운동이라고도 하는데 웨슬레 선생이 세계를 교구로 갈라놓은 것은 이 일치운동의 이니시아티브를 취했다고 볼 수 있으며 사실 웨슬레 선생은 역사적으로도 이 일치운동의 효시가 되며 선구자의 업적을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감리교가 한국에 정식으로 들어오기는 1885년으로 올라간다. 이때 처음 선교사는 아펜셀라 목사로서 장로교의 언더우드 목사와 함께 인천(제물포)에 상륙하였던 것이다.
본래 아펜셀라 목사는 이름대로 스위스나라 아펜셀러주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그렇다면 그는 스위스 개혁파 즉 장로교의 언더우드 목사는 화란개혁파 출신으로 다같이 같은 장로교 배경을 가졌다 하겠다.
그래서 그런지 두 교파가 선교지역을 설정하는 경우에도 이것을 영구적인 구획으로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본다. 다만 편리상 그렇게 하였고 나중에는 하나의 한국교회를 직향했던 모양이다. 불행히 그 뒤에 오는 선교사들이 교파열이 강했던 관계로 초지가 관철되지는 못했고 현재는 완전히 딴 교파가 된 셈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한국의 두 감리교파(즉 북감리교와 남감리교)가 미국보다 십년이나 앞질러 합동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1930년에 되었고 그 뒤 십년이 지나서야 미국에서 비로소 남ㆍ북 감리교가 합하게 된 것이다.
해방이 되자 잠시 강리교회가 친일파 목사문제로 갈라진 적도 있지만 1950년에 다시 합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교회라 할지라도 사랑들의 하는 일이고 보면 잡음도 있게 마련이요 분열을 조장하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전무하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현재도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를 안고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 있어서 분열되지 않은 교회로는 감리교회 하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감리교회는 일치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교파 연합사업에도 적극적이다. 감리교회는 NCC(한국교회 연합회) 산하에 있고 WCC(세계 교회협의회)에 속하고 있다. 감리교 계통의 사업체나 교육기관도 교파적인 제한성에서 벗어나 장로교회와 합동하여 나가고 있다.
예컨대 이화대학교, 원주의 기독교병원 등을 들수있다.
몇해 전 미국에서는 독일계 감리교파(형제단) 200만명이 미국감리교회와 연합하였고 현재 1,200만의 교도를 세고있으며, 영국에서는 성공회(앤클리칸)와 감리교회가 합할 기세를 나타내고 있다. 약간의 예배의식의 문제를 둘러싸고 아직 의견이 맞서 있기는 하지만 감리교측은 전적으로 이에 순종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할것이다.
앞으로의 감리교의 과제는 이러한 교회 일치운동 같은 형식적인 면에서는 번지르하게 잘해나가는 것 같지만, 문제는 내면적인 데 있다고 본다. 좀 더 초대 웨슬레 선생이 가졌던 그 열렬한 복음주의적인 신앙을 다시 찾아야 되고, 내적으로 부흥해야 될 중요한 시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만일 이 일을 망각해 버린다면 감리교회는 가장 어려운 위기에 빠져버릴 것을 예언할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나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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