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이유는 프랑스의 여류학자이다. 아랑의 문하생으로 철학을 배운 그는 가난한 노동자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경우에 동정하고 보다 나은 사회건설을 생각했다.
베이유는 다만 노동조건에 대해 사색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잘 이해하기 위해 자기도 여공으로 자동차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나 건강을 해치고 여공생활을 계속할 수 없어 일년쯤해서 공장을 떠났다. 그가 정양을 하려고 폴투갈 해변 마을에 머물러 있을때 교회의 축일을 맞아 가난한 여자들이 촛불을 들고 행렬에 참가하고 있는 경건한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게됐다.
베이유는 두통의 지병이 있었는데 어는해 사순절, 프랑스의 유명한 솔렘 수도원 의식에 참가했을 때도 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베이유는 유대인이며 가톨릭신자는 아니었으나 어느날 장엄한 그레고리안 성가로 집전되는 성주간 예절 중 그는 고통중에 그리스도와의 신비스런 교제를 체험했다.
이것은 베이유에 있어서 커다란 은총의 체험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나는 몇 년전 NHK에서 이상과 같은 이야기를 방송한 일이 있다. 베이유에 대해 방송한 이튿날 미지의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분은 우수한 과학자로서 국립대학 명예교수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노교수였다. 꼭 만나고 싶으니 언제라도 시간을 정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일후 대학 연구실에서 만나 여러가지 말을 들었다. 그때 이 교수는 시몬 베이유의 신비체험을 진심으로 믿을수 있는가를 나에게 묻고자기는 이것을 환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결코 나의 방송을 비난하려고 나를 찾은 것은 아니고 학원을 경영하는 그가 인간육성을 위해 노력하며 이 같은 의문에 닥쳐 조언을 구하러 온 것이엇다.
나는 이 훌륭한 과학자의 의문을 풀어주는 것은 극히 어렵다고 느꼈다. 그래서 같은 위대한 과학자인 동시에 신앙인이었던 떼이야르드 샤르뎅의 저서를 소개하고 헤어졌지만 그때 서로 이해한다는 일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꼈다. 서로 이해하려면 같은 체험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거의 일생동안 과학연구에 몰두해온 과학자의 세계관과 고통의 신부중에서 수난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회합을 체험한 철학자의 세계관이 일치되기 어렵고 대화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때만큼 크게 느낀적은 없다.
빠스칼은 우리의 체험을 3개의 질서로 나누었다. 육체의 질서ㆍ정신의 질서ㆍ은총ㆍ(애) 의 질서가 이것이다.
이 3개의 질서는 빠스칼에 의하면 서로 연결된 것이 아닌 불연속의 것이다. 흔히 쓰는 말로 표현하면「단절」된 것이다. 육체의 질서는 물체의 질서라고도 말할수 있다.
즉 먹고 마시고 접촉하고 보고 들을 수 있는 일의 질서이다. 인간중에는 이 질서에 젖어 이 질서중에서 만족과 삶의 보람을 구하고 생활하는 자가 적지 않다. 예컨데 육체의 쾌락이나 돈벌이 또는 명예와 지위와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 물체의 질서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정신의 질서이다. 빠스칼은 이것을「아트키메데스의 질서」라고 불렀다. 이 질서는 소위 진ㆍ선ㆍ미의 질서이다. 참된 것 착한 것 아름다운 것을 찾아 거기에 삶의 보람을 찾는 사람은 이 질서에 속하고 있다. 이 질서에 속한자도 먹고마시고 본능을 충족시키는 것은 일반이나 이것에 머물르지 않고 또한 정신의 질서에 삶의 보람을 구하고 있다.
끝으로 은총의 질서가 있다. 빠스칼은 이것을「예수 그리스도의 질서」라고 불렀다. 이 질서는 신비의 질서로서 인간은 절대와의 교제를 이 질서에서 실현할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2천년 이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질서안에서 절대와의 교제를 체험하고 여기에서 최고의삶의 보람을 구해왔다. 특히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수없이 많이 나타난 신비가들은 이 질서의 체험을 끈질기게 추구했다. 시몬 베이유가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체험한 것은 이 질서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3개의 질서는 어느것이나 현실에서 오는것이다. 육체의 쾌락을 탐하는 자에게는 이를 초월한 진ㆍ선ㆍ미의 질서의 존재는 아랑곳 없을것이고 있어도 없는것 같이 생각될 것이다. 반면에 정신의 질서에 생의 보람을 두고 있는 자로서는 육신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자를 동물과 같다고 경멸할 것이다. 그리고 은총의 질서로 절대와의 교제의 정복을 조금이라도 맛보고 있는 자는 물체의 질서 또는 정신의 질서의 보람을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인간이 영위하는 여러가지 체험을 3개의 질서로 나누어보면 같은 질서에 있는자는 서로 이해할 수 있고 대화와 교제를 할수 있지만 다른 질서의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고 결국「단절」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또한 이러한 사람들이 그들의 체험을 절대화하고 다른 사람들의 체험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 진실성과 가치를 의심하고 부정한다면 거기에 불행의 대립이 생길 것은 명백하다.
오늘날 인류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ㆍ단절ㆍ분쟁은 앞에 말한 것 같은 이유로 일어나는 일이 많다. 특히 현대에는 맑스와 기타의 유물논이 설파되고 이 이론을 근거로 사회의 체제를 만드는 운동이 강력히 추진되고 있다. 공산주의자는「인간은 물질」이라는 이론에 의해 현대의 혁명을 추진해왔다. 그들의 생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얼만큼 변화해 가는것 같으나 그 기본입장은 정신의 질서도 물체의 질서안에 포함시킨다
정신의 질서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나 물체에서 독립된 정신의 질서를 인정치 않고 은총의 질서는 더더욱 부정한다. 「종교는 아편」이라는것은 종교의 질서인 은총의 질서의 현실성을 인정치 않는데서 생기는 단정이다. 이러한 입장을 강력히 때로는 폭력으로 절대화하면 정신의 질서에 의한 진선미의 자유로운 탐구는 허락되지 않는다. 공산국가에서는 학문도 예술도 유물주의에 의한 사회건설에 유익하지 않으면 배제된다.
그러므로 학자도 예술가도 작가도 공산주의 사상에 협력하지 않으면 안되고 자유로운 탁구는 금지된다.
그러나 정신의 자유로운 발구의 우월성을 알고있는지 또는 체험한 자는 이러한 사상이나 체제는 찬성할 수 없다. 따라서 세계를 공산주의 사상으로 지배하려는 운동에 대해 저항이 생기는 것은 자연의 귀추이다. 또한 은총의 질서의 체험에 따라 자유로운 절대와의 교섭을 추구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금지ㆍ탄압ㆍ박해하는 사람들이나 그 체제를 인정할수 없다. 아무리 가혹한 조건하에 놓이더라도 끝까지 그 질서 안에서 살려고 한다. 오늘날 세계에서 물질의 질서를 절대화하려는 폭력적이며 혁명적인 운동으로 불행한 긴장ㆍ대립ㆍ분쟁ㆍ전쟁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질서와 그 체험을 절대화하는데서 발생한 것이라고 본다.
우리 인간이 서로 그 체험을 존중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근본조건이어야 한다. 자기의 체험만을 절대화하지 않고 다른 이의 체험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오늘날 사회에서 대화를 확립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인류가 평화하고 풍부하고 끊임없이 향상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체험을 이해하고 기쁨을 나누고 교제를 깊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또한 인간을 기르고 그 완전한 개화를 돕는 교육의 근본원리가 되어야한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를 가정생활에서 이 3개의 질서의 체험을 조화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되겠다. <外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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