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소르본느」대학에서 철학 수학중인 필자 박도식 신부님께서 그동안 14회에 걸쳐 본「가톨릭시보」에 투고해주신「예루살렘 나그네」는 지난 759호에서 끝이 났다. 박 신부님께서 성지순례를 하시는 동안 곳곳에서 느낀 소감을 기행문 형식으로 엮어서 독자들에게 그곳의 모습을 한눈으로 볼수있게 해주신 점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여기 필자의「맺는말」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번은 필자의 회고를 주로 한 것이고 그곳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느낀 짙은 상혼을 순례자의 입장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곳에 계신 필자의 건투를 빈다. <편집자>
구라파 생활 2년동안 그래도 나는 제법 여행을 한 셈이다. 하기야 구라파 유학생들에게는 방학 때는 의례히 그 자리를 떠나야 하는 형편이니 불가피한 여행이라고 할까? 어찌되었던 많은 여행을 통해서 견문을 넓히고 산 공부가 된 것은 사실이다. 내가 그동안 여행한 곳 중에서「로마」「바티깐」도 인상적이었고「나폴리」도「베니스」도「루르드」도「파띠마」도 모두 인상적이었으나 가장 큰 인상을 준 여행은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여행이었음은 말할나위도 없다. 왜냐구?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발을 디딘 곳이요 인류 구원의 복음이 싹튼 곳이기에 그렇다.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서 얻은 것은 그만큼 그리스도와 인간적으로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그곳에서 인간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느꼈고 그의 33년의 지상생활을 그대로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성지순례를 한 다음부터는 성경을 읽을 때 옛날엔 하나의 환상적인 것처럼 느꼈던 것이 이젠 직접 그곳 그리스도의 고장을 연상하면서 읽을 수 있기에 더 한층 성서와 가까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하면 많은 크리스챤들이 이곳 성지순례를 일생에 한번쯤은 했으며 하는 생각이 간절할 뿐이다. 그리고 반그리스도인들이 이곳을 여행했을 때 무엇을 느낄까? 하는 점이 나에겐 큰수수께끼로 대두되고 있다.
아무리 반그리스도주의자들도 이곳「예루살렘」도시에 와서는 입을 다물지 않을수 없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 성지여행을 통해 깜짝 놀란 사실은 예수님 설교의 고장인 이곳 이스라엘 나라가 그리스도교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약 4백만의 이스라엘 인구의 반 이상이 유대교도들이며 다음의 대부분은 회교도들이며 크리스챤들은 전 인구의 5분의1도 채 못된다고 하니 실로 통탄할 노릇이 아니냐 말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선지자는 제 고향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하신 그대로 예수님은 아직도 당신 고장에서는 냉대를 받고있는 셈이다.
1968년도 이스라엘 관광부 통계에 의하면 1년간 이곳 성지 순례객들이 수는 무려 2억불이 넘는다고 하며 해가 갈수록 순례객들은 늘어만 간다는데 도대체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전세계 5대주 6대양에서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예 이 나라는 관광부가 뚜렷이 있고 거기에는 관광부 장관까지 있으면서 외화를 가만히 앉아서 끌어모으고 있는 실정인데 이런 혜택이 어디서 온 것이냐 말이다.
이스라엘 나라가 부강해서도 아니요, 경치가 아름다운 것도 아니요, 민족예술이나 문화의 뚜렷한 본보기가 되는 것도 아닌데 이 많은 무리가 모여드는 이유는 어디 있느냐 말이다. 오로지 하느님의 독생성자께서 이 땅에 내리셨기 때문인데 이곳 사람들은 이들 순례객들의 무리를 보고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수없다. 그 옛날 예수님의 빵의 기적을 보고서 많은 무리들이 그 빵을 얻어먹기 위해서 줄줄 따라다니던 무리들과 흡사함을 느꼈다. 그리스도의「백」(BACK)으로 유신 생활까지 편하게 할 수 있는 곳, 이스라엘 백성들아! 도대체 당신들은 친구로부터 좋은 선물을 받아서 그 선물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그만 그 친구를 잊어버린 격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소이다.
예루살렘의 어떤 선물상가에 들어가서 있었던 대화를 다음에 소개한다.
마침 그 주인 양반이 친절하고 말을 자꾸만 걸어오기에 느닷 없이『당신은 그리스도를 믿는 크리스챤입니까?』『천만에요』『그런데 당신이 하는 이 상업은 주로 그리스도를 파는 상업인데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의 생활을 해나가지 않습니까? 그분을 어떻게 생각합니까?』『그건 하나의 역사적인 행운이지요』『아니, 이렇게 많은 순례객들이 전세계에서 모여드는데도 일단 그리스도의 인물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 않겠습니까?』『그건 당신들의 생각이지요…』주여! 마옵소서! 어찌하여 인간은 이렇게도 진리 앞에서,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목석처럼 느낌이 없고 생각이 돌아가지 않는지 모르겠다.
흔히 듣는 이야기 중에『예수께서 지금 이 세대에 하나의 큰 기적을 보인다면 나는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자신있게 그들에게 20세기의 가장 큰 이스라엘의 기적을 말하고 싶다. 그렇게도 메마른 나라에 해마다 40만 내지 50만의 무리들이 모여드는 현실적인 이 사실을 어찌 인간의 힘으로 된다고 할수 있을까? 이 이상 더 큰 기적은 없다고 보는데 이러한 기적을 보고도 무관심하다면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서 무어라고 말해도 믿지 많은 그들이 아니냐!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을만큼 완고한 인간의 기질은 여전히 오늘도 계속되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여! 당신의 지상나라 백성들에게 특별히 강복하소서! 그들은 말합니다. 『역사의 행운』이요『그것은 당신들의 생각이지요』라고 말입니다 그들의 완고한 마음에 사랑의 불길을 일으켜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영원한 진리의 말씀에 귀기우려 그들로 하여금 영육이 같이 살게하소서.
<끝>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