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어느 곳이든 다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의 제일 은밀한 사상조차 다 알고 계신다. 오로지 하느님만을 생각한다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힘이 증가되고 명랑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신자들은 주일이면 하느님께 경배를 드린다. 이는 성당 안에서 비교적 쉽게 전심적으로 마음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건립하신 이후 신자들은 자주 한곳에 모여 성제를 봉헌하게 된다(사도행전2, 42참조). 그러므로 모두가 형제자매이기에 응당히 함께 모여 공동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바쳐야 한다.
개인기도이건 단체기도이건 모두가 신앙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다 완전하진 못하다. 그래서 서로 대신해야하며 필히 서로 보충을 해야 한다.
기도는 애덕행위의 대용품이 아니다
복종을 한 번도 하지 않던 아이가 아버지의 생일날 마음에 드는 말만 골라서 아버지께 말했다. 이 아버지가 그의 말을 믿을 것 같은가?
하느님과의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평소 하느님께 충실한 삶을 살지 않고 하느님께 기도만 한다면 똑같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기도는 애덕의 행위와 노력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언행이 일치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를 귀기우려 들으신다. 더욱이 우리 마음속의 진실 된 뜻을 바라신다.
크게 잘못된 것
많은 사람들은 평소에는 아예 기도를 드리지 않던가, 기도할 기회가 매우 적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가 발등에 떨어졌을 때 갑자기 기도를 열심히 한다.
평소에 기도하길 회피하는 사람들은 『나는 기도할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을 한다.
또 『기도해서 무슨 이익을 얻겠습니까』라고도 한다.
그럼 사람이 어떻게 『시간이 없어서 부모에게 효도할 수 없다』 『시간이 부족해 나의 마음을 표시할 수 없고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라고 하겠는가?
기도는 이렇듯 하나의 기호가 아니라 우리가 응당히 하느님 아버지께 다해야할 책임이며 의무인 것이다. 기도는 하나의 결심이며,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면전에서 흠숭ㆍ감사ㆍ용서를 비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응당의 표시를 해야 한다. 세금을 바치는 것처럼 귀찮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시간을 내듯 기도할 시간을 찾아야 한다.
기도의 숭고함
무신론자 니체는 「사람이 꿇어앉는 것은 자신을 비굴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었다. 이는 오만한 인생 환상에 사로잡힌 소산물 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들이 아버지의 영전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고 해서 인격이 낮춰지는가? 국민이 국왕이나 대통령 앞에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도 신분을 저하시키는 일인가?
하느님께 흠숭과 감사와 용서를 비는 것은 절대로 우리의 인격을 저하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구세주이며 우리의 제일 큰 은혜로운 주인이시다.
기도하는 사람이야말로 비로소 용기가 있으며 신념을 지키는 것이다. 니체처럼 교만으로 머리를 어지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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