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나라들의 교회음악은 유럽음악의 배경을 갖고 있다. 유럽음악의 대부분은 리듬보다는 하모니에 중점을 둔 바로크 음악으로부터 발달됐다. 그러나 요즘 많은 현대작곡가들은 리듬을 중요시하므로 비유럽식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대 음악가들에게 유럽음악의 박자는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타악기 음악은 하모니보다는 리듬으로만 음악전체를 이끌고 있으며, 우리를 음악의 다른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지리학적으로 이 음악은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보급되어있다. 타악기 소리를 들으면(그것이 나무, 금속 또는 가죽으로 됐든 간에)그 소리가 바로크와는 아주 다른 세계에 속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타악기의 세계가 바로 한국문화에 깊이 뿌리박힌 음악적 전통이다. 그러므로 미사 중에 치는 종소리는 아시아음악 전통과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작은 딸랑이 종을 많이 사용했는데, 요즘은 타종이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가끔 징 또는 꽹과리도 사용된다. 이 악기들은 성가에서 강조하는 하모니와는 대조를 이룬다. 사람들은 유럽식 하모니와 타악기의 재미있는 대조를 감상할 줄 모르는 것 같다. 또한 타종이 아시아 전통음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올바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타악기는(거영성체 때 사용되는 종) 악기라기보다는 자명종 또는 초인종처럼 잘못 사용됐다. 거룩한 순간에 깊은 신비 속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는 『이제 머리를 드시오』또는 『머리를 숙여 절하시오』라는 단순한 신호가 아니라 성찬의 신비를 더 깨닫게 하기 위한 깊은 의미가 함축된 소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악기 소리와 함께 신앙의 깊은 신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성체와 성작을 올리고 내리는 사제의 행동은 종소리와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한다. 또한 종을 치는 복사는 의식적으로 열심히 그 전례를 따라야만 한다. 만일 복사들이 침착하지 못하거나 주의가 산만하다면 그 효과는 없어지게 된다.
사제가 성체 또는 성작을 들어 올리는 순가, 복사의 눈은 사제의 행위를 좇고, 자신의 행동을 사제의 행동과 일치시켜(사제가 성체 또는 성작을 올릴 때는 복사도 경건한 마음으로 종을 들어 올리고, 내릴 때는 같이 내리는 것과 같이)바로 일치된 그 순간 분위기에 맞게 종을 쳐야 한다. 타악기 소리는 서서히 깊은 정적으로 사라져가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또한 소리가 점점 커지거나, 갑자기 멈춰지면서 분위기와 어우러지게 된다. 타악기는 미사 성격에 따라(장례미사, 혼배미사, 부활시기, 연중시기 등)분위기에 맞게 달리 사용되어야 한다.
사제는 어떻게 소리에 따라야 하는지를 알아야한다. 말하자면 소리와의 친교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이것은 물론 어떤 노력을 요구하는데 만일 사제가 이와 같이 단순한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의미 있고 아름다운 전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사제가 기계적으로만 미사를 봉헌한다면 신자들은 미사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전례 자체도 전혀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예술의 모든 표현에는 늘 몸짓에 대한 의식이 있다. 불교는 타종에 대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만일 불교 스님을 초청하여 사제와 복사가 어떻게 올바르게 종을 사용하여야 하는지를 배운다면 너무 급진적인 생각일까?
미사에서는 성가뿐 아니라 때에 따라 여러 종류의 악기를 사용하는데 그 중에서도 아시아 음악전통과 깊이 관련된 악기는 타악기밖에 없다. 가끔 타악기소리는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함부로 칠 때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사목자에겐 본당내에 걱정할 중요한 일들이 많다. 타악기 소리 같은 것은 사목자들에게 관심 밖의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목자는 타악기가 전례와 우리 삶 안에서의 시간적 공간문제와 얼마나 깊이 관련돼 있는가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미사 전례(음악뿐 아니라 사제, 신자들의 행위)는 너무 느리지 않고, 너무 거칠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시간 간격을 두고 엄숙하게 진행되어야한다. 신자들이 미사시간동안 바쁘게만 전례를 따라간다면 진정한 전례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며,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마음의 여유가 없게 된다. 경본을 펴는 행위, 독서복음을 읽는 행위, 책을 덮고, 그 책을 옆에 놓고, 제대에서 독서대로 옮기는 이 모든 행위는 바쁘게 마음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미사의 각 부분마다 의미를 두면서 매우 의식적으로 행해져야한다.
불행하게도, 요즘 많은 교회에서는 미사 중에 조용한 시간적 공간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사람들은 시간적 공간이 생기면 불안을 느끼는 것 같다. 그리하여 미사해설 또는 성가로 어떻게 해서든지 모든 시간적 공간을 메꾸려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늘 바쁘게 무언가를 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회가 세속적 가치관을 복음적 가치관으로 바꾸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우리의 전례들이 바로 세속적 삶의 양식에 휩쓸려 이중적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닉하다. 우리는 사람들이 침묵의 공간을 잠시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 것에 대해 영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미사에서 사용되는 타악기의 리듬에 대해 토론만 할 것이 아니라 타악기를 올바르게 사용하여 소음 속에서, 또한 바쁘게 이어지는 전례 가운데에서 어떻게 신자들의 마음을 침묵과 내적 삶에로 자연스럽게 이끌 수 있는 가를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
타악기는 미사의 각 부분의 고유한 분위기에 따라 달리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타악기를 전례에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가 보다는 타악기 소리와 침묵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어떻게 잘 길러야 하는가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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