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왕직의 직접 대상은 교인과 교회적 사물이라 하여 앞서 간단히 고찰하였으니 여기서는 간접대상에 대하여 고찰하겠다. 교회의 왕직의 간접대상은 인간의 영원한 구원과 관계가 있는 모든 현세의 사물들이다. 그렇다면 세상이 발전할수록 이런 간접대상은 많아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총체적으로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보고자 한다.
1, 마태오 22、 15~22
바리시아파 사람들이 예수께 올가미를 씌우려고 질문을 던지는데、『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마태22、17) 하니、 예수께서 그들이 보여주는 동전을 고시고、 이 초상과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 물으셨고、 그들이 카이사르의 것이라고 대답하자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마태22、21)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로마의 속국이었기에 이런 일화가 생긴 것이다. 주님의 대답은 하느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를 구별하는 현명한 것이었다.
그런데 많은 식자들은 이 말씀을 소위 정교분리의 대원칙의 근거인 것처럼 아전인수격으로 인용하고 있다. 마치 종교와 정치는 완전히 분리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정교분리론자들은 이 말씀이 카이사르와 하느님을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서로 불간섭하는 독립체로 착각하지만、 카이사르(=로마황제)뿐 아니라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과 대등할 수 없고 하느님의 주권에 절대적으로 종속되어 있으니 그들의 해석은 절대로 성립되지 않는다.
이 말씀은 국가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하면서 국가에 대한 본분과 하느님께 대한 본분을 혼동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 당시의 로마제국은 황제를 신으로 공경하기를 강요하였으니 하느님께만 드려야 할 흠숭을 황제에게 돌릴 수 없다고 거절하는 것과 동시에、 국가에 내야 할 세금은 당연히 내야 한다고 대답하신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가 하느님의 권위 밖에 있는 절대적 존재일수는 없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이 말씀은 사람이 국가에 대한 본분을 다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본분을 다해야 하는 것이고、 당신이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세속적 국가가 아님을 가르치신 것이다. 다른데서 제자들이 언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것인지 물을 때마다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고(마태20、20~23:사도1、6)、 군중이 왕으로 모시려 하자 산으로 피하셨으며(요한 6、14~15)、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세상의 것이 아니다』(요한 18、36)라고 잘라 말씀하셨다.
2, 로마13、1~7
바울로의 로마서도 아전인수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자세히 살펴본다.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고 세상의 모든 권위는 다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13、1) 하느님께서 세우신 권위하면 정당한 권위를 말한다. 강도두목의 권위는 악한 것이니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다. 따라서 「모든 권위」란 말은 「모든 정당한 권위」로 알아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권위를 거역하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것을 거스르는 자가 되고、 거스르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13、 2). 모든 정당한 권위는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므로 이것을 거역하면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니 심판을 면할 수 없다.
『통치자들은 악을 행하는 자에게나 두려운 존재이지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통치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선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통치자는 결국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그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서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벌을 대신 주는 사람입니다』(13、 3~4)
정당한 국가권력은 하느님의 통치권의 위임을 받아서 권선징악을 한다는 것이다. 공권력은 하느님의 시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행사되어야 하고 공통선을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공권력은 백성에게 봉사하는데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고 하느님께서 시종으로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벌이 무서워서뿐만 아니라 자기 양심을 따르기 위해서도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여러 가지 세금을 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통치자들은 그와 같은 직무들을 수행하도록 하느님의 임명을 받은 일꾼들입니다』(13、5~6).
신자가 국법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처벌을 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양심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로는 항상 정당한 권위의 정당한 명령을 전제로 하고 말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공동선에 위배되는 요구에 대해서까지 양심적인 복종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 하십시오…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사람은 존경하십시오』(13、7). 정당한 권위에 대한 경외심은 신자의 의무이다. 그러나 부당한 권위의 남용에 대해서는 시민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킬 권리가 있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국가의 존립에 필요한 것을 정당하게 제공하고、 교회 안에서 무정부주의나 반국가적 경향을 배격하여야 하고、 국가가 그 임무의 한계를 넘으려할 때에는 비판 세력으로 서 있어야 하며、 국가가 특정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면 교회는 이를 거부해야 한다. 이것이 성서의 가르침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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