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학군 영산이란 곳에 가면 흥미로운 민속이 있다. 이곳은 철도변이 없고 대구~마산을 연결하는 버스만 왕래한다. 철도가 없어서 옛풍속을 많이 간직하는지 또는 이 지방사람들이 원래 민속적인 놀이를 많이 간직하고 이에 대한 애착이 많은지 모르겠다.
요즘은 3월1일 행사의 하나로 각종 민속놀이가 결합되어 3ㆍ1절이 되면 영산에서만 특유하게 만세사건이 있었고 경찰서를 습격하여 항일투쟁을 독자적으로 행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러한 민속놀이를 한꺼번에 묶어 행하는 것이다.
3ㆍ1절이 종합적 행사이기에 보통 3~4일이 걸린다. 3ㆍ1절 기념식에 이어 각종 백일장도 열리고 각종 가장 절정을 이루는 것이 줄다리기다. 영산 일대가 마구선 즉 대구와 마산을 잊는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의 두 팀으로 갈린다. 한 팀은 수개의 부락을 포함한다. 각 부락에서는 며칠 전부터 새끼를 꼬아 이것들을 다시 합하고 또 합하여 꼬아놓으니 길이가 50m가 넘고 둘레가 1m가 넘는 굉장한 끈을 만든다. 도로 좌측의 줄이 숫줄이다. 줄이 워낙 크기에 양쪽 옆에 당기는 줄을 또 달아 마치 지렁이의 모양을 하고 앞의 머리는 둥글게 구멍을 만들어 암줄 숫줄을 끼게되어있다.
이 줄을 만드는데 며칠이 걸리며 단단하라고 소금물을 뿌린다. 줄을 여자가 넘으면 부정하다 하여 밤을 세면서 남자들이 지킨다.
줄 당기는 날 아침부터 온 부락 사람들이 수백명 모인다. 옛날에는 들판에서 줄당기기를 하였으나 지금은 학교 운동장에서 한다. 워낙 줄이 크고 무거워 달구지 몇 대가 동원이 되어 이것을 싣고 간다. 줄 위에는 대장 중장 소장 3인이 올라가 지휘한다. 부락의 여자들은 손에 대나무가지를 들고 대잎을 날리며 남자들은 선황대 응원기 휘장 등을 들어 5색이 찬연하고 온통 운동장은 인파와 깃발과 대잎으로 가득 찬다.
암줄과 숫줄이 가까이 오면 달구지를 제쳐놓고 암줄 머리구멍에 숫줄을 끼고 숫줄구멍에 비녀(기둥)를 끼어 빠지지 않게 한다. 이것을 끼는 광경이 또한 볼만하다. 남녀노소들이 그 앞에 와서 온갖 음담을 다한다. 구멍이 어찌 큰지 사람이 서서 지날수 있다. 노인들이 앞에 와서 『너 저런 큰 구멍 보았느냐 지나가 보아라』하는가 하면 옆에서 치안을 맡은 경관이 빨리 불어서 줄당기기를 하라 소리지르니 한 할머니 말이 대낮에 合宮하는 법이 어디있느냐 밤이돼야 된다고 응수한다. 경관은 말도 못하고 가버린다.
한편 빨리 끼자하여 암줄을 끄러오라 하니 여가가 가는 법이 없다 남자가 와라 하고 소리 질르기도 한다. 이리하여 실랑이를 부리기 몇시간 후에 숫줄을 암줄에 끼고 신호와 동시에 양쪽에서 당기기 시작한다. 남녀노소 모두 담김줄을 잡고 그것도 모자라 아무의 말도 잡고 허리도 잡고 무조건 당긴다. 남녀노소 혼연일체다. 그러나 줄다리기에서는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오든 줄이 다시 밀리고 그 큰줄이 들먹들먹한다.
이래서 또 몇십분이 지난다. 암줄이 이기는 기미가 확실하자 중지의 신호가 나지만 들릴리 없다. 할 수 없이 경관들이 공포를 쏘아 중지신호를 하니 이번에는 암줄로 사람들이 달려들어 당김줄을 끊어가느라 야단이다. 이것이 순식간에 일어나 뽀얗게 먼지가 피어오는 어둠속에서 줄들을 잘라들고 집으로 간다. 이때 어린이들도 한뭉텅이씩 끊은 줄을 짊어지고 집으로 달려간다. 이 줄을 지붕위에 얹으면 그 해 재수가 좋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누가 시켜서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 틈 바구니 가랭이 사이에서 줄을 당겨 이기고 이긴줄을 끊어다 우리집에 복이오게 하려는 어린이 심정 그래서 그 무거운줄을 짊어지고 엄마가 기다릴 집으로 달려간다. 어둠속에 사라지는 어린이의 마음에 어찌 복이 따라가지 않을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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