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주간의 모든 예절은 예수님의 전생애 중에서 인류구원을 위하여 가장 절정을 이루는 죽음과 부활을 우리에게 현실화시키는데 그 깊은 뜻이 있다. 인간은 고금을 막론하고 중대한 역사적 사실을 되새기길 원한다. 예수를 믿는 신자들도 자기들의 구원사실을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생생한 현실로 참여하고 새롭게 경험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뜻은 특히 구원사가 이루어진 성지의 예루살렘에서 가장 쉽게 실현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랜된 것으로 북스페인의 한 원장수녀의 기록을 들 수 있다.
비잔틴제국의 황후 뿔케리아와도 친척이 되는 에제리아 원장수녀는 그의 예루살렘 성지순례기에 성지주일의 행사에 대하여 상세한 기록을 남겨주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성금요일의 5일전주일(지금 성지주일) 오후에 예루살렘의 온백성과 순례자들이「오리와」동산으로 모였으며 그 자리에서 메시아왕의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성서의 대목을 봉독했다. 성서 봉독이 있는 다음에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에서 행렬이 시작되어 서서히「오리와」산을 내려갔다.
그 행렬은「젯세마니아」동산 가까이의「기도론」골짜기를 지나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서 예수부활 기념성당에 이르러 성대한 찬미가를 마침으로써 끝을 맺혔다.
이 행렬에서 주교님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신자들을 선도했으며 신자들은 모두 손에 손에「빨마」가지를 들고 흔들며 찬미가와 메시아왕 만세를 부르며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했다고 한다. 특히 이 행렬에는 어린이들도「빨마」를 가지고 같이 참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성지축성에 대한 말은 없다. 아마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무가지를 꺾어 사용하는 그것만으로 축성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행하고 있는 예절에도 성지축성과 행렬로 되었지만 이것은 아마 게르만족의 영향에서 왔다고 본다. 게르만족이 아직 외교인들이었을때 그들은 나무가지는 나무를 다스리는 신에 속한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모든 나무가지는 악마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개종 후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잡신들을 몰아내는 축성식을 하게됐다. 그래서 집이나 외양간이나 뜰이나 어디에나 이 축성한 성지를 두는 곳에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은 물론 가축이나 재산까지도 불행에서 보호해준다고 믿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다.
그 후에 행렬의식은 그리스도왕의 개선을 더욱 잘 나타내기 위하여 그리스도왕께 대한 공적인 신앙고백이 따르게 됐고 전유럽에 전파되어 성주간의 개회식같은 민속이 되었다.
우리가 지금 지내고 있는 성지주일의 의의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자체를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거듭되는 수난예언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의 생애에는 우리가 잘 알지못한 한가지 은밀한「의무」가 있었다. 즉 그것은 성부의 구속사업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그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 사상은 언제나 그를 재촉했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성대하게 예루살렘 입성을 실시하였으며 늘 은밀하게만 말하던 자기의 메시아성을 온 예루살렘이 다 알도록 공포했다.
그는 뭇 백성의 환영을 받음으로 오직 한번 자기가 하느님이 보낸 평화의 사신으로 인정을 받게 됐다. 그리고 똑같은 백성이 며칠후에 그를『십자가에 처치하라』는 소리를 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늠름하게 최후의 승리자로 군림할 것을 암시해주었다.
예수님은 그를 죽음에서 구원할 수 있는 성부의 인류 구원의 참뜻을 채워드리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그래서 그의 예수살렘 입성은 그의 메시아 왕권에 대한 고백이요 희생적 죽음에 대한 하나의 각오와 준비의 표시였다.
제자들은 이 사실을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비로소 알아들었다.
즉 그의 예루살렘으로의 개선에 관한 하나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예수님은 새로운 창조의 첫출생자요 우리는 이 구원의 새세상에 모두 그를 따르도록 초대되었다. 오늘 우리가 하는 성지축성 및 거동행렬은 열심한 전통이나 아름다운 기념행사가 아니고 우리 소명의 한 표시이다.
우리는 사제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앞장서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와 같이 행렬한다. 이 행렬에 연달아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미사 성제에서 예수님의 천상 예루살렘 입성이『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만세 무강하소서!』라는 우리의 노래와 같이 우리 소명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 생활에 한 반영이 되게한다. 이 성지축성 거동행사의 참된 참여는 우리생활을 그리스도와 같이 만들고 비록 어떠한 희생과 난관이 닥치더라도 그에 대한 신앙고백을 할 각오를 갖게하는데 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이 성지축성 행렬은 우리에게 신앙의 깊이를 가져오고 구원의 신비를 체험하게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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