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기대도 없이 피에르는 조용히 휘파람으로 신호를 했다. 항상 에띠엔느가 달려나오던 신호.
『신부님!』
어디서 부르는 소릴가? 굳게 닫힌 덧문 뒤에서 누가 아직도 잠들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가?
『신부님…』
그는 목소리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달빛이 선술집 훗면을 비치고 있었다. 그 위 창문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드니즈가 눈에 띄었다.
『드니즈!…그래 마르셀은 어떻게 됐니? 제르메느도?』
『술주정을 했어요. 그래서 아빠가 경찰을 불렀어요』
『그래 에띠엔느는?』
『병원에』
『심해?』
두 줄기의 눈물자욱이 빛난다.
『심하게 다쳤니?』
자기도 알아들을 수 없는 목쉰 소리가 나왔다.
『몰라요』
『내가 가보지!』
피에르는 떠났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갔나? 루이의 장례식, 쟝의 자살, 그리고 나서 정처없이 헤매던 망각의 시간
지금 몇시쯤 됐을가? 쟝은 시간을 모르고 지냈다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다. 쟝…행복…오늘 아침 교회문 앞에서 한 소녀가 오월의 첫영랑꽃을 팔고 있었지. 그것은 「행복을 가져오는 꽃」이라고.
조라가에서 피에르는 어떤 친구가 시골에 일하러 가기 전에 맡겨놓고간 자전거를 집어 탔다. 28번지는 싸니에서 도둑을 맞는 일이 없는 유일한 장소.
그러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는 집이다.
피에르는 잠들고 있는 어두운 도시를 가로질러 갔다.
병원의 불침번을 하는 인턴이 탐정소설로 읽고있다.
거절을 당하지 않도록 피에르는 처음으로 신부라는 자기 신분을 밝히며 인사를 했다. 젊은이는 그를 대등하게 대우하며 곧 알려주었다.
『두개골에 상처를 입지 않았나 합니다. 오늘밤에 지내는 상태를 보면 내일 아침에는 판단이 갈 것입니다. 열이 높습니다. 그래서 제정신이 아니지요. 그러나 특히 걱정이 되는 것은 구로증입니다. 』
『만일 두개골에 상처를 입었다면?』
『그렇다면…』
그는 에띠엔느를 포기한다는 몸짓을 했다.
『의식을 있습니까?』
『언제나 똑똑하진 않습니다. 참, 안됐어요…담배 피시겠습니까? 그 아버지가 닥치는대로 아무것으로나 때렸다니 말입니다. 심지어 십자가로서 까지 때렸다더군요!』
인턴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술취한 사람에겐 상징같은 것이 눈에 보이겠습니까. 그 방에 누가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늙은 수녀하고 젊은 여자가 있습니다. 올라가도 좋읍니다. 왼쪽 복도를 따라가면 끝에 계단이 나오지요, 삼층 오른쪽에 있는 조그만 방에 넣었습니다. 』
피에르는 에띠엔느를 고쳐주는 그 손을 조용히 잡았다. 그리고 복도와 계단을 따라갔다.
『그럴수 없어. 골이 터지다니. 루이와 쟝이 죽은 지금…그럴수 없어! 부활절 전날 밤인에? 그럴수 있나?』
그는 껄껄 웃었다. 그러나 갑자기 멈추었다. 숨이 콱 막혔다. 마치 어느 커다란 손이 목을 꼭 조이는듯 했다. 오늘 밤엔 내 몸에 조심해야겠군. 한 몸둥아리가 둘이 되어 한 놈이 다른 놈을 엿보는듯 하다…조그만 방에 들어서자 그는 침대위에 흰덩어리와 검은덩어리가 눈에 띄었다. 하나는 붕대에 감긴 에띠엔느의 머리요, 또 하나는 루이의 고양이였다. 헐덕이는 숨소리가 고르지 못하다. 마치 구원을 청하는듯 하다. 스잔느와 늙은 수녀님이 침대 양편에서 일어났다.
『수녀님 어덯게 될것 같습니까?』
『틀렸어요』
피에르는 두 손으로 침대에 매달렸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오?』
『내 나이 예순여섯인에 이런것을 처음보는줄 아시오? 이 헛소리, 열, 또 구토증, 이 숨소리를 들어 보세요? 이젠 틀렸어요』
수녀는 고개를 숙였다. 스잔느가 피에르 옆으로 왔다. 그의 턱이 떨리고 있었다.
『신부님 왜 저 애를 저버렸어요?』
이것은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이었다. 피에르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는 단 한마디 이렇게 요구했다.
『나 혼자 이 애하고 있게 해주시겠소?』
두 여인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나가려는 순간 어린애는 무섭게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호흡이 멈추는 것 같았다. 두 여인은 다시 돌아오려 했다.
『아니요 우리 둘만을 남겨두시오』
피에르의 조용한 목소리다. 문이 닫히자 그는 에띠엔느에게 다가서 드려다 보았다. 그의 본 얼굴을 되찾아보려고 애썼다. 자…자…이젠 에띠엔느를 불러서 얘기할 수 있다. 그는 조용히 그들의 신호인 휘파람을 불었다. 이 어린아이가 혼자 헤매고 있는 낯선나라에서 불러내야 한다. 그는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그는 자기마음속이 텅비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아직 불충분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완전히 비어야 한다…완전히 비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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