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쥴리아와 神津島▲
쥴리아는 임진왜란때 일본에 잡혀온듯 하다. 불행중 다행으로 귀족의 딸이라고 알려져 小西行長의 양녀가 되었다. 이미 신자였던 小西行長 집안에서 생활하며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쥴리아란 이름을 받지 않았나 한다. 보통 오따아 쥴리아라고들 하나 오따아란 말은 언제부터 어떠한 유래를 가진 것인지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금교령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배교를 않은 탓으로 유형을 당하여 40여년간 神津島에서 생활하다 생을 마쳤다 한다. 神津島는 동경 항구에서 약 180㎞ 떨어진 남방 해상에 자리잡고 있으며 18.37㎞이다. 인구는 약2천 정도이며 어업을 주로 하는 섬으로서 자연이 매우 아름답다.
▲쥴리아와 섬 사람들▲
神津島 사람들은 얼마전까지 쥴리아가 천주교 신자인줄을 모르고 수백년간 쥴리아 무덤을 가꾸고 무덤 앞에서 기도하였다고 한다. 다른 몇몇 무덤과 자리를 같이한 쥴리아의 무덤은 일본에서는 비교적 보기드문 석동으로 된 두드러진 모양을 하고있다. 고기잡이를 주 업으로 하는 섬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나가면 부인네들이 쥴리아 무덤앞에 와서 어부들의 무사와 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빌었으며 한달에 두어번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워놓고 기도를 계속하여 왔다고 한다. 쥴리아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안 오늘날에 와서도 쥴리아에 대한 그들의 마음은 변치 않고 있다. 무덤 가까이에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대를 이어 의무로 알고 쥴리아의 무덤을 가꾸어 왔다는 소박한 할머니들이 살고 있다. 쥴리아는 섬 사람들의 마음속에 끊을수 없는 인연을 맺은채 영원히 살고 있을 것이다
▲순교의 결실
쥴리아가 1612년 경 神津島로 유형되어 40여년간의 생활끝에 세상을 떠난 이후 350여 년이 흘렀으나 이 섬에는 한 사람의 신자도 없었다. 신앙만을 유일한 무기로 알고 생활하였던 쥴리아는 이 섬에서 미사에 참예하기를 그리고 자기와 신앙을 같이하는 벗이 있기를 계속 기구하였을 것임에 틀림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쥴리아제는 연중행사의 하나로 되었다. 그때마다 미사가 바쳐진다. 이는 쥴리아의 소원이 350여년 만에 지상에 들어 허락된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순례단이 출발하던 24일 아침 75세의 할머니가 마리아 오따아 쥴리아란 이름으로 성세를 받았다. 무엇보다도 기쁘고 뜻깊은 일이라 하겠다. 쥴리아가 이국에서 얻은 신앙 이국에 뿌린 순교의 선혈이 350여년이 지난 오늘 비로소 그 결실을 맺기 시작하였다. 쥴리아가 뿌린 순교의 피는 오늘도 내일도 아니 영원히 이국의 하늘 밑에서 약동하여 계속 그 열매가 맺어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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