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화 한 토막이 있다. 어떤 정신병원에 환자 한 사람이 자기가 덮고있던 사람이 자기가 덮고있던 담요를 풀어서 노끈을 꼬고 있을때 간호원이 물어보길『그건 왜 풀어서 노끈을 꼬지요?』『이 노끈을 꼬아 팔아서 돈을 벌지요』『돈은 무엇하게?』『그 돈으로 새 담요를 사지요』『새 담요는 무엇하게?』『그걸 풀어서 또 노끈을 꼬지요』이상과 같은 대화에 아마 독자 여러분들도 웃으시겠지요? 사람들은 목적 의식 없이 행동을 거듭하는 자를 보면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비웃는 자들에게 묻겠다. 당신은 남이 비웃지 않을만큼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일상생활에 임하고 있는지? 행여나 당신도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돌고도는 물레방아 인생이 아닙니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위에서 이야기 한 정신병자의 행동에 대해 웃지는 않았겠지요? 인간은 자기가 하는 행동에 만족하리만큼 가치를 부여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행동이 과연 가치있는 것인가 알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어떤 목적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야만 할 것이다. 무릇 사물에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물건 자체가 가지는 특유한 목적에 어긋나는 행위가 유발된다면 그 물건이 가져야 하는 가치는 없어진다. 예를 든다면 시계의 목적은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고 또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만일 시간을 못알려주는 시계가 있다면 그것은 시계로서의 가치가 없어진다. 그러고 보면 사물의 가치는 그 사물이 가지는 고유의 목적에 도달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렸다고 봐야한다. 우리는 흔히 보람있는 생애, 가치있는 삶을 주장하지만 과연 어떤 생애가 보람있는 생애인가 생각해보자. 옛날 진나라 시황제는 불로초 불사약을 구하려 했으나 죽었고 자칭 신이라했던 로마제국의 네루도 허망하게 죽었다. 또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던 그많은 사람들로 뜻있는 생애, 보람있는 생애를 못 가졌다. 의를 알고 자기의 시작을 알고 가야 할 방향을 아는 것이 즉 나의 마지막 목적을 알게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더 보람있는 생애가 또 있을까? 옛날 성현들도 말했다. 『자기 자신을 알라』고.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배가 자신의 위치도 모르고 가야 할 방향을 정할 수 있겠는가? 나의 근본도 모르고 목적인들 정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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