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세 된 김 부인이 상담소를 찾았다.
결혼한 지 22년. 아들딸이 대학교ㆍ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공무원이던 남편이 지난 4월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결혼해서 2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일들로 마음고생도 많았지만 그런대로 평탄한 결혼생활을 해왔다고 만족하며 살아왔다.
작년에 남편이 위암선고를 받고 절망 속에 1년을 보내면서 50을 갓 넘기고 고생만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남편이 불쌍해서 울기만 했다. 그러나 운명하기 한 달 전인가 남편은 엄청난 비밀을 털어놓았다. 5년 전부터 동거해온 여자가 있고 그 사이에 네 살짜리 딸도 하나 있다는 고백이었다. 그 아이를 이미 호적에도 올려놓았다는 것이었다.
호적을 떼어보니 김 부인의 3남매 밑에 그 아이도 나란히 올려있었다.
죽기 전에 용서받고 싶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김 부인은 졸도를 했다. 응급실로 실려가는 소동 속에 의식을 회복하고 이성을 되찾아 남편에게 아이와 여자를 데려다주었다. 마지막으로 만나보도록 해준 것이다. 김 부인은 본처로서 할 도리를 다 한다고 생각했고 죽은 사람에 대한 분노도 용서로서 녹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장례를 치르자 여자 쪽에서 재산상속문제를 들고 나왔다. 애써 가슴속 깊이 묻어두려던 상처를 다시 들추어 아픔을 주는 것이었다.
남편의 소유재산이라야 지금 살고 있는 집 한 채 분인데 그 여자가 아이의 몫을 달라고 나선 것이다. 알고 보니 남편은 3년 전에 이미 그 여자에게 아파트 한 채를 사주었었다. 양심이 있는 여자라면 이미 재산도 마련해주고 본처 자식으로 아이도 입적시켜준 이상 아무 소리 없이 그 아이나 잘 길러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상속권을 주장하고 있다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미 사준 아파트도 도로 빼앗고 아이 호적도 빼버리고 싶다는 호소였다.
40대 중반의 남자、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책임을 져야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젊은 여자를 첩으로 두고 자식까지 낳아 기르면서 이중생활을 해온 것은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비난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김 부인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고통을 위로하면서도 법률적인 조언을 해주어야하는 상담자의 마음도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첫째로 생전에 그 여자에게 사준 재산은 사망 1년 이전에 사준 것이기 때문에 재론할 수가 없다. 사망 전 1년 이내에 사주었다면 주인과 자식들은 유류분 권리자로 그 일부의 반환을 청구할 수도 있었다.
둘째、아이 호적문제는 김 부인이 원하는 대로 그 호적에서 아주 빼버릴 수는 없다. 그 아이도 김 부인의 남편자식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호적에 올린 것은 정당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 어머니를 본처인 김 부인으로 한 것은 사실과 다르므로 생모를 밝혀 고치는 것만 가능할 뿐이다.
이 경우 김 부인이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심판청구를 하면 된다.
셋째、그 여자가 주장하는 아이 몫의 재산 상속권은 김 부인이 원하지 않아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 아이도 사망한 남편의 딸이므로 김 부인 소생의 딸과 마찬가지 비율로 공동 상속권이 있는 것이다.
김부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하나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위로받기 보다는 더욱 분노를 느끼고 죽은 사람을 증오하면서 상담실을 나갔다.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하는 축첩행위를 근절하는 길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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