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의 세계 성체대회는 1백 개국 이상의 대표자들이 모인 가운데 4년마다 개최된다. 성체대회와 올림픽은 모두 국제행사로서 1백 개국 이상의 나라들이 참석하며、두 행사 모두 4년마다 개최되는 점이 같다. 그리하여 성체대회는 「가톨릭 올림픽」또는「영성 올림픽」이라는 말로 많이 불려지고 있다. 또한 지난해 서울에서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진 후 이어서 제44차 세계 성체대회가 개최되기 때문에 「가톨릭 올림픽」이라는 말이 예전보다 더 자주 쓰이게 된 것 같다. 그러면 「올림픽」이라는 말이 성체대회에 대한 호칭으로 적합한가? 「운동선수」라는 말은 성 바오로가 그의 서간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시하면서 즐겨 인용한 말이다.
성체대회를 잘 묘사하기 위해 올림픽 게임의 비유를 사용한 것은 성 바오로 서간을 보더라도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성 바오로는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개인적인 내적 고행을 강조한데 반하여、「올림픽」은 금메달을 따기 위한 승리주의、거대한 행사 등 외적행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마디로 성체대회는 나눔、공동체 형성과 화해를 위한 것이며、올림픽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교만(?)이 내포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성체대회가 지향하는 것 중 하나는、단지 가톨릭 신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개인적 의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성체는 신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 관련된 실제생활과 구체적인 사건 안에서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미사에서 예수님을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같은 종교적 상징이 형식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선물인 음식에 대한 책임감을 갖도록 영감을 넣어주는 일에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는 성체를 보고 받아 모실 때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이다.
미사는 음식과 함께 하는 성찬식이므로、오늘날 가톨릭 신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도의적 책임 중의 하나는 10억 이상의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이 성찬의 축제를 할 수 있는가이다. 마치 이것은 초상집에서 결혼축하연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신자들이、수백만이 굶주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고 성체를 받아 모신다면 그들은 형식주의에 빠져들어 참종교 행위를 실천한다고 볼 수 없다. 올바로 영하는 행위 안에는 음식을 전혀 낭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음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나눈다는 약속이 함축되어있다.
낭비는 소비사회 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또한 어느 정도 낭비를 해야만 전체경제구조가 돌아가도록 되어있다. 소위 선진국들은 지구의 자연자원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빠른 속도로 자연환경을 파괴하여 파멸에 이르게 하고 있다.
산업과 농업에서 화학약품은 공기、물、토양을 오염시키고 있으며、점차적으로 인간보다는 쥐나 바퀴벌레같이 적응력이 강한 것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제44차 세계 성체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교황 요한바오로2세의 말을 인용해보면、『분단된 한국의 고통과 아픔은 바로 부족한 신뢰와 믿음을 화해로 이루기 위한 분단된 세계의 상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서로 다른 정치적 이데올로기 사이에 존재하는 미움과 갈등을 뜻한다. 그러나 인간사이의 갈등(즉 가족간、종교간、국가간 또는 정치적인 갈등)은 점점 인간-지구사이의 갈등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지구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때 인간 사이의 갈등은 저절로 해소되리라 믿는다. 바로 몇 년 전 석유의 부족현상이 정치적 갈등의 원인이 됐던 것처럼、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식수 오염현상도 정치적 갈등의 원인이 될 것이다.
자연세계는 모든 종교전통에 있어서 중요하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제시한 주요한 것 중 하나이다. 가톨릭시즘에서 물、빵、포도주는 계시의 한 부분을 뜻한다. 서울에 모인 가톨릭지도자들에게 있어 시급한 과제는 선조들이 자연세계에서 대해 가졌던 경외심을 가톨릭신자들과 비신자들이 상기하도록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제44차 성체대회가 자연을 착취하거나 정복하기보다 오히려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장구한 불교 전통과 철학이 숨 쉬고 있는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은 아마 멋진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자연과 자연 상징의 중요성을 인식할 때 성체의 깊은 의미가 우리의 내면에 충만히 전해지리라 본다.
위에 언급한 주제들에 대한 진지함、그리고 그 주제들과 성체 사이의 중요한 관련성을 볼 때 「가톨릭 올림픽」이라는 말은 성체의 깊고 풍요한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너무 단편적이고 빈약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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