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다. 만상은 소생하고 봄의 훈기를 받아 새싹이 튼다. 새싹은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썩은 다음에 그 양분을 먹고 자라난다.
추하고 보기 싫은 번데기에서 아름다운 나비가 나온다. 자연의 섭리는 과연 신비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사람이 죽어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더더욱 신비스런 일이다. 사도신경에는 확실히<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히 삶을 믿는다>했다. 자연과학상으로는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살다가 죽었지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성경에 있는것 외에는 없다. 우리는 인간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 이것은 믿을 교리 즉 우리의 신조다. 불가능하다고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없던 사람을 창조했다. 없던 사람을 창조도 하는 하느님이 이미 있었던 사람을 죽음에서 부활시키는 일은 더 쉬운일일 것이다. 인간의 죽음이란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 상태를 말한다. 그 분리된 상태에서 제결합하는 상태를 부활이라 한다. 그 제결합이 이루워지는 것을 믿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의회의 가르침도<모든 사람이 지금 가지고 있는 본 육신으로 부활하여 각기 선행이나 악행대로 보수를 받는다>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신조는 구약시대 즉 그리스도가 아직 세상에 나기전부터 믿어왔던 교리다. 구약시데 쓰여진 예언서에 보면<내 구세주 생활하시고 나 종국날에 무덤에서 부활할줄 아노니 내 피부로 다시 입혀질 것이요, 내 육신으로 내 천주를 보리로다>(욥서 19장25)라고 쓰여있고<때가 오매 무덤속에 있는 모든 이가 천주 성자의 소리를 들을것이니 선을 행한 자는 나아와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할 것이요 악을 행한자는 나아와 죄로 판단함을 받기로 부활하리라>(요한5장28~29)했다. 그리고 성경 여러곳에서 사람의 부활을 말했다. 그렇다고 성경에도<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아나리오>(욥서14장12~14)이라 했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 인간의 생활을 그대로 말한것이다.<영원히 삶을 믿나이다>란 말은 우리의 궁극 목적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만 그친다면 구태여 종교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종교를 가지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가지는 것이다. 즉 종교인의 궁극 목적은 영원한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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