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을 끌었다. 마침내 세 사람의 판사가 자리를 잡았다.
재판장이 침울한 어조로 선고했다.
남편에게 징역 일개월 집행유예, 아내에겐 무죄석방. 검사는 들리지 않는척 했다
마르셀은 변호쪽을 향했다.
『석방이오』변호사가 일러줬다. 변호사는 신경질적으로 서류뭉치를 정리하고 있었다. 마르셀이 가까이 가서 고맙다고 하자
『나한테? 뭣 때문에?…아 그렇군요!』하고는 나가버렸다.
보도부장은 이제 막 인쇄해 나온 신문을 훑어보고는 편집부장에게 갔다.
『「싸니」의 재판사건을 1면에 3단으로 사진과 함께 실었으면 좋겠소』
『노동사제 사건 말이오? 4면이면 충분해. 왜 그렇게…』
『이것 읽어보시오! 두 가지 사건을 연결시키면…』
『…60세… 오늘 「끄리쉬」가에서 살해되다…등에 칼을 맞아서…이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소?…』
『그 사람도 빠리밋션의 신부요. 창부를 구출하던 신부요 삐갈 신부라고 부르는.』
⑪
대주교가 급히 부른다는 전화가 밋션에서 걸려왔을 때 피에르는 거의 절망적인 안도감을 느꼈다. 중대한 수술을 받을 날짜가 결졍됐을 때 느기는 심정과 같다 할까.
그는 수화기를 놓고 돌아섰다. 마드레느는 고개를 숙인채 문에 기대 서있었다.
『그렇소. 대주교님이 부르시오 내일 토요일에 가 뵙겠소.』
『아마 신부님이…아니 우리가 좀 조심성이 모자랐던 것 아닌가요?』
『아마 그랬겠지. 조심성이라는건 마치 감기 걸리는 것처럼 사후에나 깨닫게 되는거요. 뒤늦게 느낀단 말이오! 공장 회계과에서 계산기를 본 적이 있소. 사무원이 별로 신경도 쓰지않고 이것저것 누르고 마지막 합산키를 누르니까 뗑하는 소리가 나며 합산숫자가 나오더군.
어떤 때는 마이너스가 될 때도 있고…나도 그처럼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이것저것 좋다고 생각하는 키를 누른 셈이오…』
『조심성이 없다는 것! 그리스도께서도 그 모범을 보이셨지 않아요!』
『바로 그게 문제요.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오』
『그러나 대주교님께서 명령하시면』
『어자피 난 그 명령에 순명하겠소.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면 얼마나 마음 편하겠소』
피에르는 대주교와의 회견을 애써 상상해보지 않으려 했다. 주교관으로 가면서 일주일 전 재판소에 갈 때보다는 몸이 가벼웠다. 자기자신에게 관한 일이고 보니 역시 가슴이 덜 무거웠다. 하이얀 집이 눈앞에 나타나자 그는 반가움과 경계심이 동시에 우러났다. 마치 이제는 낯선사람이 살고 있는 자기 옛집을 바라보듯이.
조그만 변화라도 놓지지 않으려고 그는 열심히 살펴보았다. 붉은 꽃이 핀 화분이 현관 양편에 놓인 것이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비서실로 안내되었다. 겉보기에는 무엇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벽을 쭉 훑어보던 피에르는 가슴이 꽉 막혔다. 마지막 초상화는 돌아가신 추기경의 것이었다. 고뇌에 찬 눈초리에 미소를 머금은 그 모습, 피에르는 그 초상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새로운 대주교가 나타날 것을 상상해보았다.『아니, 비서가 먼저 나오겠지.』비서신부가 들어왔다. 그는 젊고 꼬장꼬장했다. 그 검은 눈이 누군가를 연상시킨다.
『피에르 신부요?』
『네』(아 그렇다 젊은 판사의 눈초리)
『대주교님이 기다리십니다.』
사무책상뒤에 앉아 있는 대주교는 등뒤의 창문빛을 받아 검은 윤곽만이 드러난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는 대주교는 커다란 얼굴에 이마가 시원히 트이고 두터운 안경을 쓰고 있다.
『안녕하시오. 신부』
그는 피에르를 앉으라고 손짓하고자기도 앞자리에 앉았다. 비서관은 물러나갔다. 대주교는 오랫동안 묵묵히 말이 없었다.. 그는 다정하면서도 지친듯한 눈초리로 피에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안경을 벗었다. 피에르는 처음으로 그의 눈빛을 보고 미소지을 수 있었다. 가을같은 두눈동자 깊숙히 빛나는 불길. 대주교가 입을 열었다.
『난 추기경님을 사랑했소. 당신도 그런줄 잘 알고있소. 그러나 아마 그 이유는 각자 다를 것이고 또 사랑하는 방식도 다를 거요 왜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하느냐?…이것이 까다로운 문제요…』
『네, 대주교님』
『하느님을 사랑하는데도 마찬가지요. 사람들을 사랑할 때도 그렇고』피에르는 결심했다.
『대주교님. 하실 말씀을 빨리 해주십시오. 제가 사랑하는 방식이 대주교님 뜻에 어긋납니까?』
『아니오』
대주교는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피에르는 그의 두툼한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창가에 가서 대주교는 돌아섰다.
『난 당신을 비난하는 소리를 다 믿지는 않소. 난 변호사나 검사의 말도 조심하오. 이방에는 당신과 나, 단 둘뿐이오. 내가 하는 말이 옳지 않으면 말하시오』
『감사합니다. 대주교님』
『난「싸니」를 모르오. 그러나「싸니」같은 다른곳들을 알고있소. 그래 당신 생활이 어떤 것인지 상상을 할 수 있소』
『아닙니다…』
『아니라니…』
『「싸니」에서의 사제의 생활은 상상하실 수 있으시겠지만 노동자의 생활은 상상못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우선 사제의 몸이오』
피에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주교는 가까이 다가왔다. 피에르는 손을 내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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