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치가 굳은 성채가 됨은 쇄국적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속의 악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안의 성신의 사랑의 뜨거운 불로 녹아버릴 것이요, 나아가서는 등잔위의 촛불같이, 밀가루 속의 누룩같이 닥쳐오는 세기를 주의 이름으로 의화하는 힘이 될것이다.
다음으로, 가진바 모든 것을 공번되이 쓰고 전답과 가산을 팔아 각 사람에게 요긴한대로 모든 이에게 나누어주었다.
(사2ㆍ45-46) 자기들의 재산을 공번되이 쓰고 요긴한대로 모든 이에게 나누어 주었으니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심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사도교회는 이것이 비록 모든 믿는 이들에게 계명으로 준수된 사실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것이 믿는 이들의 기본 정신이었다는 것은 틀림이 없고 또 이정신은 2천년간을 면면히 흘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세대의 우리의 사명감을 통감해야겠다. 말슴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스스로 속이는 자(야고보서1ㆍ22)가 아닌가? 이「말씀」은 어떤 관인에게 하신 에수님의 말씀에 의하여 요악적으로 천명되었다.
(루18ㆍ18-27)사도교회의 모든 믿는 이들은 당초에 자기의 것이요, 자기임의에 달린 재산(사5ㆍ4)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실행에 옮겨 스스로 속이는 자의 불명에를 지지(負)않았다.
재산욕에는 동서고금이 있을 까닭이없다. 어찌 사도시대의 믿는 이들이라 해서 재산욕이 오늘의 우리들보다 희박했었기를 바랄수 있겠는가? 그들은 성신을 충만히 받아 이 말씀의 실천에 거의 순교적이었다. 물질문명의 발달이 교회안에서의, 이 보이는 공동체 의식에 찬물을 끼얹기 시작한지 오래다. 교인이 오히려 애긍 시사에 인색하고, 사리에 눈이 어둡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을만큼 여운을 남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활동에의 참여가 오히려 교우들은 그 적극성에 있어서 희박하다고도 한다. 사도시대의 이 교풍이 액면 그대로 오늘날에 옮겨질 수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정신이 물질적면에서 뿐아니라 정신적면에서 또는 육체적인면으로 현세에 적합하게 실천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교회가 현재 많은 사회사업과 육영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나 이는 주관자의 피나는 노력외에 전체 믿는 이들의 힘이 뒷받침되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적어도 시무룩해질수 밖에없는 실정이 아닌가? 오히려 이는 외국인들의 손길이나 국가의 근근한 도움만으로 경영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내 코가 석자여서라는 말로만 체면이 유지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임의의 재산이기에 천주님의 오묘한 섭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을 낳게하신 것이리라. 또한 비근한 예로 오히려 지금 교회밖에서 더욱 활발하게 운영되고있는 신용협동조합같은 것도 교회 안에서는 주님의 말씀의 실천으로 어필되고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실정이기도 하다. 몇몇 뜻있는 신부님이나 교우들의 이에 대한 외침도 여운없는 메아리로 사그러지고 말았다. 개인주의는 나를 앞세우기에만 급급하지 교회안에서의 활동은 구미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일 헌금이 고작해서 본당 재정이나 가까스로 보태 써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아가보의 예언 흉년에 문도들은 각각 할만한대로 애긍하여 교회 어른을 통하여 시사했다(사11ㆍ28-30)한가지로 천주를 찬양하고 모든 백성들에게 인심을 얻으니 구령할 자들을 날마다 저들중에 더 많아지게 하신 일(사2ㆍ47)이 새삼스레 기이할 것이 없다.
교회 어른을 통한 시사, 우리들의 현실을 생각할 때 지극히 함축성있는 말씀이다. 프랑스의 어떤 교우가 장사를 해서 우연히도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그 돈중에서 한뭉치를 뚝 떼어가지고, 길가에서 만나 뵌 신부님 포케트에 넣어드리며 기억나시거든 미사시간에 불쌍한 연옥영혼을 기억해주십시오 하고는 총총히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야말로 쓰레기통의 장미꽃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로 만들어 흘리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한 송이 장미꽃이다. 오늘의 우리의 공동체는 이러한 정신에있어 그리고 그 실천에 있어 너무나 미온적임을 솔직히 고백하면서 사도시대에로의 정신적 재생이 이룩되어야만 하겠다.
이상으로써 사도시대의 믿는 이들의 생활, 특히 공동체로서의 생활 상태를 영신면과 육신면으로 고찰해봄으로써 우리 현실생활을 반성하면서 신앙부흥 운동에 있어서의 몇가지 변변치 못한 제언을 시도해보았다.
공포의 세기에 적응할수 있는 새로운 신앙적 무장이 제2차「바티깐」공의회에서 반포된 교령의 근본정신임을 상도할 제, 우리는 마땅히 이 시점에서 타성적이고 개인적인 신앙생활에서 하루속히 선탈(선脫)하여 용감하게 주님의 지상명령인 땅 극변에까지 나를 증거하라는 말씀을 실천해야 할 단계임을 굳게 주님앞에서 다짐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하나 하나의 신앙은 삭틀줄 모르는 겨자씨가 되어 썩어가고 형식화되어 하나의 교양, 또는 하나의 악세서리로 전락할 것이요 세상은 악이 판을 치게 될것이다.
하느님의 영적을 기다리지 말라. 세상의 의화는 우리들 손에 맡겨진 것이 그의 섭리가 아니신가?
끝으로 사도 바오로께서 신자들에게 하신 이별의 강론 말씀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주를 섬기는 중에 온전히 겸손하매…, 무릇 너희에게 요긴한 것은 하나도 궐하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나보다 더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행하는 일과 주 예수께 받은 바 전교직분을 다하고 천국 성총의 복음을 증거하기만 원하노라…. 내가 아무 사람의 은이나 금이나 혹 의복을 탐치 아니하였으니, 나와 함께 있는 자들에게 요긴한 것은 이 손으로써 벌이하였노라, 나 너희에게 모든 표양을 보였으니, 대개 이와 같이 일하여, 마땅히 연약한 자들을 대접하며, 또한 주 예수의 이르신바, 남에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리라 하신 말씀을 생각할지니라.
(사20ㆍ18-35)<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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