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기보다 발전한다. 끊임없는 발전법칙에 어긋나는 어떠한 비관적 숙명론이나 지리적 결정론도 배격되어야 한다. 외세의 침략을 정당화해온 그러한 이론은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를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하는 민족 허무주의의 대두는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시급히 이 땅에서 불식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정체성 이론을 극복하고 민족 자주정신을 양양하기 위하여 비역사적이요 반역사적인 일체의 타성을 지양함으로써 민족을 재발견하려는 줄기찬 시도가 이기백 교수의「민족과 역사」에 엿보인다. 과연 한국사학이 직면한 가장 큰문제의 초점은 민족에 있다. 민족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자면 역사를 보는 눈이 흐려져 있어서는 안된다. 한국의 역사가 무기력하다거나 민족성이 나쁘다는 식의 견해는 다만 민족정신 말살의 작풍을 진작할 뿐이었다. 우리 역사의 오랜 발전과정이 민족을 형성해온 것이며 오늘의 한국인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상이라는 것도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요구에 응하여 생겨나고 받아들여지고 발전하게 마련이다.
한국사 이해에 놀랄만한 참신성을 지닌 이 저서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역사와 민족의 참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일찍이「한국사신론」으로 학계에 새 바람을 몰고온 저자는 ①한국 사학의 과제 ②한국사학의 반성 ③한국 전통사회의 일면 ④민족성론 ⑤민족문화론 ⑥사대주의론 ⑦민족의 대외항쟁 등 7개 항목으로나누어 27편의 논문을 여기에 모아 역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면서 그동안 이 나라 문화풍토에 만연돼온 낡은 관념을 타파하고 민족의 자주성 개발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나 지극히 단편적인 시론들의 재수록인 관계로 체계정연한 저술에는 미급하다.
(일조각 刊 AS版 250面 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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