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와 쇠가 부딪히면 불이 튕겨 나오고 폭력과 폭력이 부딪히면 피가 흐른다.
인류는 함께 모여 살면서도 남을 해치며 살아왔다. 그러나 불의하게 당한 해악은 어떻든 갚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그런데 남을 해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나쁜 일이지만 그 앙갚음을 하는 데는 이치를 넘어서 그 몇 갑절의 복수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 복수 행위가 민족 집단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면 그것은 전쟁이다.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은 왕녀를 도둑맞은 앙갚음을 하기 위한 복수전쟁으로 십년을 끌었다. 그 복수의 복수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적국을 말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복수의 열기는 개인 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 고대의 선진국들은 이러한 사회를 다스리기 위하여 법을 만들었다. 마구잡이 복수를 막고 공평한 정의의 사회를 도입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이 인류 최고(最古)의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00년경)이다. 이 법전은 당시의 선진국이었던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가 정의의 태양신에게 받은 법전으로 그 중의 탈리온 법이라고 하는 복수법이 유명하다. 가라사대 「목숨은 목숨으로、눈은 눈으로、이는 이로、손은 손으로、상처는 상처로、타박상은 타박상으로 갚아라」라는 것이었다. 목숨의 손상을 입었을 때에는 가해자에게 목숨의 손상을 입히고、눈의 손상을 받을 때에는 가해자에게 눈의 손상을 줌으로써 복수하라는 법이다.
물론 개인이 해야 할 의무이며 권리이다. 구체적인 예로서 만일 집짓는 건축업자가 집을 잘 못 지어서 집이 허물어져 집주인의 아들이 죽었을 경우 그 집을 지은 건축업자의 아들의 목숨을 빼앗아야 한다. 공자님도 자기 아비가 살해되었을 경우 아들은 한 평생 그 아버지 살해자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잘 때에도 칼을 베개 밑에 품고 자라고 하였다.
이러한 복수법은 헤브레아 인들도 도입하여 함무라비법전의 복수법을 그대로 옮겨놓았다(출애21、24~25:레위 24、20:신명19、21).다만 헤브레아인들은 바빌로니아의 개인 복수법을 사회적인 복수법으로 세련시켰다. 그것은 「피의 복수법」이다. 피의 복수법은 피해자의 친척이 대신 복수할 수 있도록 법적용을 어느 정도 사회화하였고(민수 34、19)、복수의 대상자가 무정한 복수의 손길을 피할 수 있도록 일정한 도시로 도피하면 그 안에서는 복수를 할 수 없게 하였다.
이것을 「은닉도시」라고 하여 레위제관들의 6개 도시가 지정되어 있었다(민수35、13~14). 이것은 그들이 인권을 존중하는 자비의 법이었다. 극히 원시적인 법같이 생각되는 복수법은 사실은 오늘날 문제세계에서도 그 근본정신이 그대로 살아 있다. 다만 개인적인 린치형식이 아닌 국가관할로 변했을 뿐이다. 복수를 요구하는 소리가 우리주위에서 얼마나 크게 소란스럽게 들려오는가.
예수께서는 옛날 세계의 법률적인 정의사회를 사랑의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 『앙갚음하지 말라』. 그것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부딪히는 소리가 더 커질 뿐이지 악을 극복하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악마가 와서 치근덕거릴 때 맞서지 않고 논리적인 설득으로 쫓아 보내셨다. 원수들이 당신을 무고한 죄를 씌워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참아 받으셨다. 당신을 잡으려 잡배들이 칼을 들고 밤중에 습격해왔을 때、베드로는 칼을 뽑아들었다. 예수께서는『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오로도 주님의 사랑의 교훈과 모범을 완전히 터득하고 교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여러분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악을 선으로 갚으시오』라고. 악을 없애는 것은 그와 맞서는 악이 아니고 사랑으로 참아 주는 선이 악을 녹여 없애버린다.
예수께서는 이 교훈을 구체적인 생활에서 예를 들어 말씀하신다. 『오른 뺨을 때리거든 왼뺨마저 맞아주고、속옷을 뺏으려 하거든 겉옷까지 벗어주고、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가주어라』. 우리는 사람의 뺨을 때릴 때 오른 손으로 왼 뺨을 친다. 그것으로 뺨치는 행동은 끝난다. 이스라엘인들은 오른손 등으로 상대방의 오른 뺨을 먼저 친다. 그러니 다시 왼뺨을 때려야 한 행동이 끝난다. 그리고 이것은 치욕을 주는 행위로 법에 규정되어있다. 그러니 오른 뺨을 맞고 왼 뺨을 피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치는 자의 법적 행위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옷은 법소송으로 압류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옷을 차압하려는 자는 나쁜 사람이다. 그러다 해도 깨끗이 내어주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에서 키레네의 시몬이 당한 것처럼 아무 사람이나 붙들고 짐 지는 일에 징용당하는 것은 로마의 식민지 유대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가자는 데까지 갔으면 되지 더 갈 필요도 없고 더 갈 수도 없다. 오리를 가자는데 십리를 가준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 말투는 위의 두 경우와 어법상의 표현을 맞추려는 마태오의 글재주일 것이다.
하여튼 달라는 사람에게 주라는 것이다. 바보스러운 교훈 같지만 세상의 악을 없애는 길은 이 길뿐이다. 모든 사람이 다 바보스럽게 살수는 없지만 몇 사람은 이 바보스러운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순교하는 바보들、희생하는 바보들、내 것을 남 주는 바보들、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밝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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