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청주시 남문로 1가 154번지、세칭 육거리시장내 위치한 「서운동 순교지」 에는 현재 기독교장로회 청주제일교회가 들어서 있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주부들의 바쁜 걸음으로 막 술렁대기 시작하는 시장 안을 가로질러 좁은 골목길을 몇 발짝 들어서면 높다란 교회첨탑이 선뜻 눈에 들어온다.
『서운동순교지요? 글쎄요. 처음 듣는 것 같은데 … 』
『글쎄요.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요』
『지금 제일교회 자리가 옛날 교우들이 순교한 곳이라고 들었지만 자세히는 모릅니다』
1866년 유명무명의 많은 천주교신자들이 피를 흘렸던 「서운동 순교지」에 개신교교회가 서 있는 것부터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약 5년 전에 우연히 듣게 됐지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열 번이면 열 번 절을 하고 지나간답니다』
육거리시장 안에서 쌀가게를 하고 있는 정벨라뎃다(서운동본당)씨의 얘기다.
아들에게도 순교지를 지나갈 때는 꼭 절을 하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이 아주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기록조차 변변치 않은 서운동의 발자취를 더듬다가 마침내 순교지를 지키고 있는 개신교회를 대하고 부끄러움과 묘한 감회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박해기간과 형벌ㆍ처형의 잔혹함、순교자수 등에 있어 한국천주교회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병인대박해가 전국적으로 확산됐을 때 이곳 서운동(옛날 이곳은 남문 밖으로 정확히는「남문로」임)은 배교를 거부하여 여러 감영을 옮겨 다니던 교우들이 최후로 이송돼와 고문당하고 옥살이를 하던 영문(營門)이 있던 곳이었다.
이곳에 끌려온 교우들은 대부분 순교하기를 원해 이들을 심문하던 형리들도 『천주교도들은 말로만 배교할 뿐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까지 말할 정도였다.
가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은 이들 교우들은 지금은 매몰돼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근처 돌다리(石橋)아래에서 망나니들의 칼에 목숨을 바쳤다고 한다.
교회 뒷편에 서있는 누각위에서 옛날 이곳 관리들은 개울가 돌다리 아래에서 교우들이 처형되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천주교인들을 재판하던 동헌이라는 소리도 있으나 어쨌든 우리 신앙선조들과 운명을 같이한 건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누각 위를 올라가보니 삐걱삐걱 거리는 소리가 마치도『내일은 꽃이 필 것이다』라고 신음 중에 토해내던 신앙선조들의 안타까운 목소리를 듣는 듯 느껴졌다.
천주교신자들의 목을 자름으로써 신앙의 싹까지 잘라버리고자 했던 그 무서운 병인대박해의 소용돌이 속에서 연풍사람 추순옥 회장ㆍ진천 기장골의 오 바오로 등 병인박해증언록이 밝히고 있는 20여명의 순교자들과 이름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순교당할 수밖에 없었던 무명 순교자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교우들의 뜨거운 피가 뿌려진 이곳을 아는 사람조차 드문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교구에서는 이곳이 순교지라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개신교회가 자리하고 있어 성지개발을 위한 구상조차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실정에 놓여있다.
『교회신도들도 이 자리가 옛날 천주교신자들이 순교한 곳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그것을 누구보다도 의미 깊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이곳 제일교회 이쾌재 목사의 말을 듣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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