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라. 이 전대미문의 윤리명령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솔직히 말해서 난감하다. 전번 대목에서 복수하지 말고 참아라. 노력해 볼만하다.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그가 싫거든 피하라. 이것도 노력해 볼만 한 일이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라. 이 명령은 도저히 실천에 옮기기가 난감한 일로 여겨진다. 다만 이 명령이 무슨 뜻인지 해설이나 해볼 일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구약시대의 고상한 명령이었다. 여기서 이웃이라는 것은 이스라엘민족의 동족을 말한다. 동족이라는 것은 반드시 혈통의 동족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동화되어 들어온 사람도 이웃에 속했다. 이와 같은 뜻의 이웃개별은 이웃 아닌 사람들을 원수로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면 원수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이유는 하느님이 정해주신 땅에 같이 살고 있고 하느님이 선택한 백성 안에 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 땅을 유린하고 이 백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느님을 공격하는 것이나 같다. 이 공격자들은 용서할 수 없는 원수들이다. 원수들을 무찌르는 것은 하느님이 당한 치욕을 회복하는 일로서 민족적인 종교 감정이었다.
여호수아서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군사행동이 이런 뜻에서 치러졌고 열왕기에서 침략군과 싸우는 전쟁기에서 그러하였고 유디트와 에스텔 두 여걸이 이와 같은 종교심에서 원수를 무찔렀다. 그리고 구약시대의 마지막 왕조 마카베오 일가의 애국전쟁에서 전국에 대한 증오심은 여실히 나타나 있다.
그러니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에는 반드시 원수를 미워하라는 꼬리가 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도 원수를 미워하라는 명령은 단 한 번도 내려진 일이 없다. 원수를 미워해야 하는 것은 이웃사랑을 민족적으로 구하고 종교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겨난 민족적 전통이었다.
예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일러둔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예수께서 애족 애국하는 선조들의 뜻을 저버렸을까. 아니다. 유대아인들의 그 편협 된 이웃사랑과 원수증오의 전통이 오늘날 빚은 결과는 무엇인가. 그들은 지금 민족적인 증오를 끊임없이 받고 있다. 제2차 대전시에는 나치의 시온주의에 대한 증오로 끔찍한 박해를 받았다
현재까지도 아랍민족의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편협 된 원수증오가 가져다 줄 미래의 결과를 미리 내다 보셨는지도 모른다.
이제 이웃사랑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고쳐져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민족의 구별 없이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제자들에게는 이웃과 원수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어느 누구만 사랑하는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다. 유대아인들과 이방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교회를 이끌어 나아가야 할 사도들에게는 모든 사람이 이웃이라야 한다. 그들이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한 결과 박해자 로마는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증오를 없애는 방편은 사랑뿐이며 이 일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르는 자들만이 해냈다.
그 정신은 결국 그리스도의 기도의 정신이다. 모든 사람이 기도하지만 그 기도는 그리스도의 정신에서 기도하는 방향으로 정련되어야한다. 먹고 살기 위하여는 재물을 위하여 기도한다. 그리고 자기와 가족을 위하여 기도한다. 여기까지는 결국 자기를 위한 기도이다. 이런 기도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말하자면 하급기도라고 할 수 있다. 친구를 위한 기도、자기가 속해있는 단체인원 이웃을 위한 기도、나라를 위한 기도의 순으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접근해 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정 어려운 것은 생면부지의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심지어는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어려운 만큼 그리스도의 완덕에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해를 비추어 주시며 비를 내려주신다는 예를 들어 예수께서는 원수사랑을 제자들에게 독촉하셨다. 그들은 하느님을 대신하여 일할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완전성을 따라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인간들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심으로써 완전하시다. 제자들은 인생전체를 하느님께 봉사함으로써 완전하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보통사람들처럼 처신해서는 안 된다. 자기를 칭찬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자기네들 끼리끼리들 사이에서만 사귀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정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손익관계를 내다보며 하느님의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하느님의 일을 맡은 사람들의 직무에 임하는 태도이다.
1983년 개정된 교회법 제286조에서 성직자에게 영업행위를 금지하고、287조 2항에서 정치적 정당이나 노동조합、지도층에서 능동적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은 바로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하느님의 은총의 비를 내려 주라는 주님의 명령을 반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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