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기 서어커스 사람들 보게!』
붉은 사쓰바람의 곡예사들이 깡충깡충 뛰어나오고 있다.
『그럼 내 잘못이었어』
피에르가 다시 입을 연다.
『그만해둬! 물론 우리 둘이 너무 가까이 지냈지. 그것이 남의 눈에 거슬렸던거야 그러나 한가지 말해두겠는데…(그는 일어나 앉아 피에르를 정면으로 보았다. 어두움이 내리고 있다.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어떤 사람이 코를 골고 있다)만일 내가 자네 친구가 아니더라도 자네와 함께 손잡고 일했을 거네. 우리 동료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실 크리스챤과 사이좋게 지내라는 것은, 당의 지시가 아닌가?』
『당의 지시였지. 그 후로 변했어』
『왜 우리는 안변했는데』
『자넨 언제나 귀가 어두워. 난 곧 변경된 지시에 따라야 했단말이야. 내가 잘못했어,확실히 내 잘못이야!』
『자넨 가책을 느끼나?』
한참만에 앙리가 대답했다.
『아니』
『그럼 그런 공개비판은 걷어치게』
『나같은 사람의 잘못으로 발전이…』
『닥치게. 자넨 남의 말을 외고 있는거야, 자네처럼 외부 사람들과 접촉을 갖는 사람이 더 중요한거야』
앙리는 상을 찌프린다.
『그래 자네 말에 의하면 이중간첩만이 좋은 사람이란 말이지?』
『아니야, 남들이 이중간첩 취급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란 말이야』
말이 우는 소리가 서어커스장에서 크게 들려왔다.
알룩 달룩 꾸민 여섯마리 말의 고삐를 소년들이 입구앞에서 붙들고 있다.
갑자기 천마문이 열린다.
눈이 부신 말들은 잠시 멈칫하더니 환한 불빛속으로 달려든다.
마치 불꽃을 향해 어쩔 수 없이 날라가는 하루살이 모양.
『당원들이란 바로 저런것이지!』
피에르는 속으로 생각했으나 앙리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음악이 울려오고 박수소리가 요란하더니 잠잠해지고 북소리가 들려온다.
피에르가 입을 열었다.
『그것봐, 쟝이 자네한테 심하게 구는데…』
『아니야!』
『그렇지 뭐야. 루이가 맞아죽은 데서 멀지않은 곳에서 우린 얘기하고 있어.』
『나도 그 생각을 했어. 그자들이 오늘 오후 그 얘기를 할 때 난 루이 생각을 했어. 나도 그런 쓸모없는 늙은이가 돼선 안되겠다고.』
『자넨 쓸모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니 대단하군. 루이는 친구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바쳤어. 「싸니」전체가 그것을 알고있지. 그런데 르바스는 못난 녀석이야, 알겠나, 르바스는 못난 놈이야!』
그는 숨이 거칠어졌다.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늙은 루이가 자기안에 살아나는듯.
앙리가 조요히 물었다.
『그런데 자네도 무슨 속상한 일이 있나?』
『같은 거야. 난 명령이 내려서「싸니」를 떠나게 됐어. 자네하고 너무 가까이 지냈던 모양이지. 조심성이 없다는 거야』
『그자들이 스므번은 되풀이한 말이 바로 그거지! 그럼 자넨 어떻게 하겠나? 모두 걷어치우겠나? 아니면 본당 신부가 다시 되겠나?』
피에르는 껄걸 웃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야 계속하는 거지, 아마 다른 방법으로 다른 곳에서 하겠지만 하여튼 계속하는 거야!』
『자넨 됐어.』
앙리가 한참만에 대답했다.
『자네말이 옳아 나도 역시 계속하겠어 언젠가는 꼭 만날걸세 자네가 가는 곳에서 만일 당원들이 자네한테 못되게 굴어도 그자들을 저바리지 말아주게.』
『자넨 내가 누구를 저버리는걸 보았나?』
『아니… 아니. 그것이 우리와 다른점이야.(그는 벌렁 누었다) 서어커스가 끝나 저 사람들이 가면 조용히 잘수 있을걸!』
『아니』
피에르가 대꾸했다.
『난「싸니」의 저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며 잠이 더 잘오네. 여보게, 잘자!』
그는 친구 옆에 누어서 눈을 감았다. 둘이 나란히 옆에 누었다. 넒은하늘 아래 전쟁터에서 버림받은 두 부상병이 적인줄 알았다가 친구인 것을 안 두 병사와도 같이….
하룻밤 비운「조라」가의 집은 빈집같이 음산하다. 피에르는 알미늄으로 된 트렁크를 헌옷과 서류뭉치 밑에서 끌어냈다.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뽈랫트가 흰천을 가슴에 안고 들어왔다.
『신부님을 위해 수를 놓았어요. 어제밤에 아주 마쳤어요』
『쟈꼬가 얘기하던 저축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피에르는 천을 폈다. 사제의 장백의(長白衣)였다. 그는 가슴이 꽉 막혔다. 미소짓는 입가가 떨렸다.
『제가 이 방에서 신부님과 애기한 첫번째 사람이었지요』
『나도 잊지 않았소.』
『이 제의를 입고 첫번 미사를 드리실 때는 샹딸을 위해 기구해 주시겠지요?』
『만일 샹딸이 직접 하느님께 한마디라도 할 수 있게 되면 내가 밤새껏 기구하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을거요.』
『그럴리가!』
『하느님은 다행히 마음이 약하실 때가 있거든』
피에르는 웃으며 계속했다.
『그것이 내 유일한 희망이오, 길 잃은 양이…』
『스잔느는 에띠엔느와 함께「오르레앙」에서 돌아왔어요. 삐갈 신부님의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오늘 아침에 여기 들릴거예요. 그리고 또 한가지. 에띠엔느가 신부님을 정거장까지 모셔다드린다고 해요. 길을 잘 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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