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무거운 체험이 그 껍질을 깨고 언어로 터져나올 때 작품의 공간을 우리는 감득하게 된다. 외면적 언어에서 내면적 언어로 전화된 시를 통해서 삶의 참모습이 드러나며 내면공간을 확보하는 법열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적어도 모리스 블랑쇼에 의하면 그러하다. 때때로 우리는 불재를 의식한다. 이벅찬 불재의 소용돌이를 극복하려는 순수한 요청에 따라 현대시는 언어를 개방해야 하고 진지한 생자체에 접근해가는 본원적 체험을 시인은 작품의 새로운 공간구축에서 그 나름대로의 내면적 공간을 펼쳐나간다.
세상은/썰수록 커가는 불재의 둥근사과/ 이가 시린 사과속에/손을 담그면/멎었던 일상의 시계소리도/여울져오고….
나날의 아침은/바람으로 미역감는/해의 내실/이따금 주일의 맑은 성가ㆍ에/혼을 씻으며/타지않는 겨울볕에/꿈을 말린다.
(홍윤숙 제4시집「일상의 시계소리」에서)
불재에의 애착으로부터 영혼의 실재를 확인하는 신선한 감각이 넘친다. 불재와 현재와의 동일성을 기조로 하여 무한한 공간의 전개가 가능함을 본다.
시집「일상의 시계소리」가 동화의 미로를 맴도는 본원적인 체험의 시어로 충만돼 있다면 김남조 시인의 제7시집「설일」의 세계는 온통 불의 축제라해서 과언이 아닐 정도다. 「설일」의 시상은 그만큼 불을 향료로 삼고 있다.
그러기에 일상속에서「차갑고도 뜨거운 눈발」을 의식하며 이를 다시 불로 사르지 않으면 안되는 이 시인이 열망하는 바라면 삶은 언제나/은총의 돌층계의/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섭리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로 된다. 훈기도는 사랑의 열도로 인간불재를 탈피한 감미로운 공간의 접근이다. 시집「설일」에 22편,「일상의 시계소리」에 27편이 수록돼 있다.
여기에 가톨릭 시문학의 돌파구가 될 가능성을 지닌 작품들도 적지않다.
(한국시인협회 刊 A5판 값 각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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