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정신을 생각할때 그가 유교적 정치이념에만 집착하지 않았음은 그의 전저작의 외곽에 나타난 이상적인데서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신 남인일파의 관료적 유학자들이었던 그들은 일면 서학관계서책을 읽는데서 멈춘 것이 아니라 탐독-이해했을뿐 아니라 동시에 곧 실천했던것 같다. 그리고 다산주변의 인물들이 천주교신봉은 물론 영세명을 지니고 있었으니 이미 신앙의 생활화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다산의 유교적 정치이념에는 서학적 이념에 의한 전개이었음은 의심할바 없다고 하겠다. 이러한 면의 실증적 구명이 무엇보다 긴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쉽게 해득(解得)하게 두가지 지식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다산학체계의 우선 유교적 정치사상의 분석 이해이다. 다산이 신유교난(辛酉敎難)이 일자 봄에는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그의 조카사위 황사수(그의 백형약전의 서)의 백서의 탄로로 다시 신유의 동옥(冬獄)에 걸려 강진으로 이배(移配)된 뒤 7년여를 강진읍 변두리의 어느 노파의 주막집 아랫방을 얻어 촌민들의 병을 보아주면서 주로 신론(기해방례변, 상례사전 등으로 정리)연구에 집중하다가 1808년 봄 다산서(귤동, 지금 만덕동)으로 이사한 뒤에는 시경강의(詩經講義)(12권) 춘추고징(春秋考徵)(10권)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40권) 중용자잠(中庸自箴)(3권) 대학공의(大學公議)(1권) 맹자요의(孟子要義)(9권) 심경밀험(心經密驗)(2권)… 등의 연구에 전심하였으며 이 무렵 흑산도에 유배 되어있던 형 약전(자산어보의 저작)에게 편지로 할수만 있으면 「주례전주(周禮全注)」를 저작하고 싶다고 하며 이젠 눈이 어두어 일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흑산도의 형님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면 지금의 우리들도 애처로운 감(感)을 억제하기 어렵다.
다산은 경서연구를 관료적인 자리에서 다룰 것이 아니라 당시의 문란한 국가정치와 그 밑에서 시달리고 있던 농민대중에의 끝없는 애인정신에서 그 정신의 기들을 잡기위한 기초적인 작업으로 유교경전의 분석이해를 위한 재검토다. 얼른보면 주자학적인 이념을 그대로 추구하는듯 싶으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른 정치 농민-인간을 위한 정치가 이룩되게 할려던 것이었다. 다산의 500여 권의 전저작속에 주례에 관한 저작은 없으나 유적의 땅에서 간절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다산이 주례에 뜻을 둔 것은 복구적인 뜻에서가 아니라 주례라라는 저작은 후대에 있어 개혁의 근본을 이루는 것으로 송대에 있어 왕안석도 그 개혁론을 제시할 때 주례에 근거하였고 청말의 손태양도 역시 주례에 의하여 개혁론을 제시하고 있다.
다산의 「주례전주」의 구상은 곧 당시정치 경제의 개혁론을 뜻하고 있었던 것이다. 직접체계적인 「전주」의 편성에 손을 대지 않았으나 실질적으로 전주의 구상을 역사적으로 전개하였다. 다산의 경학연구는 다산년도에서 거의 완성되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치 경제개혁논의 기반조성에 불과한 작업이었다.
다산이 삼십삼세때 정조의 어명으로 경기도 연천 쪽으로 암행어사를 나가 어명대로 일이의 협잡 사항을 밝히어 정조에게 복명을 하면서 임진강안 적성(지금 장단일부)쪽의 농가를 보고 그 빈새한 모습을 시로 읊고(농민시) 복명서(수계)에서도 농민들의 궁핍을 건져야겠다는 뜻을 대왕에게 알리었다. 이 정신은 그가 삼십육세에 외방으로 나갔을때 곡산부사로서 농민들에게 직접실천했다. 즉 학리(學理)와 실천을 겸용해 보았으나 이러한 한때의 일로만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강평에서 다산서당으로 옮기자 그 생각을 체계세워본 것을 실천에 옮긴 것이 곧 경서연구이었다. 1808년서부터 1815년(개혁론 작성직전)까지에 정치경제의 기본이되는 __전부의 연구가 된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산은 대략의 연구는 되었으니 보다 시급한 정치적 개혁과 경제적 개혁방안의 정리에 착수하였다. 물론 처음 손을 댈 때는 순차적으로 먼저 중앙행정기구를 조선현실에 맞게 중국체제를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서 재검토축소하여 다시 개편하게 되었다.
이것이 1817년에 일단 이루어진 「경세유표」(일명 방례초본)40권이다. 주례의 체제를 삼분의일로 줄인 우리 국가기구의 개편이다. 국가재정의 감축을 목표로 된것이다. 「유표」(초본)라고 한 것은 유배의 죄인으로 후일에 남긴다는 뜻이다. 경세-국가경영 방례-국가제도를 말하는 뜻이다. 그러나 다산은 이 저작중보다 시급한 일이 도탄에 빠진 농민의 생활 문제가 더 다급한데서 미완의 저작으로 남기고 붓을 심서(心書)로 옮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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