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억압생활과 「출애급」이라는 역사적 상황 안에서「야훼」이름을 몸소 계시하셨다. 이스라엘의 해방은 하느님이 그 선조들과 맺으신 계약을 역사 안에서 신실히 이행하신 결과이고 당신의 이름을 결정적으로 계시하신 사건이다. 해방의 위업을 통하여 하느님은 당신이 어떤 분이고 무엇을 하시는지를 밝히고 역사를 주도하는 분으로 나타나신다. 「엘」이 가족적 분위기에서 소박하고 친숙한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데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데 반하여 「야훼」는 험난한 사막과 속박생활의 환경 안에서 불의 방식으로 당신을 계시하신다(출애3、6-10).
「야훼」이름
이름은 특정 인물을 다른 이들과 구별시켜주는 기능만이 아니라 그 인물의 본질을 나타낸다. 이름을 주는 것은 다른 이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야훼」는 알아듣기 힘든 신비에 찬 이름이다. 가시덤불이 불에 타면서도 타 없어지지 않는 현상은 역설이다. 이 현상으로써 하느님은 모세를 당신에게로 이끌면서도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고 엄명하신다. 하느님은 이름을 알려주면서도 정확한 뜻을 밝히기를 꺼려하시는 것 같다. 『이 이름은 비밀일진대 어찌 너는 묻느냐?』(판관13、18). 역설이 내포된 이름이다. 신비와 초월의 영역에 계시는 하느님이 사람을 끌어당기고 그에게로 향해 가신다. 아무도 근접할 수 없는 하느님이 세심한 관심과 강한 활력을 갖고 존재하며 역사 안에서 백성을 위한 해방의 위업을 펼치신다.
「야훼」는 「나」와 「있다」라는 두 마디로 구성되었다. 「나」는 완전한 자유와 주체의식을 갖고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재」의 철학적 의미를 암시하는 듯하다. 「너」와 관계를 맺으려는 인격적 특성을 드러낸다.
야훼는 역사내의 모든 생성변화를 초월하여 스스로 존재하지만 사암들과 함께 「나-너」의 관계를 맺고자 하신다. 따라서 그것은 하느님의 현존양식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함께 있음
야훼는 선조들의 하느님으로 있어왔고 또 그 후손들을 압제에서 해방하려는 하느님으로 먼저 소개하신다. 계약에의 신실로 말미암아 과거부터 억압받는 백성의 고통스런 생활에 동참해 왔고 (「나는 내 백성이 고생하는 것을 보았다」:과거)、그들의 신음과 절규를 듣고 있으며(『나 이제 내려가서』:현재)、약속의 땅으로 백성을 인도하려 하신다(「그들을 빼내어 … 데려가고자 한다」:미래). 백성의 과거ㆍ현재ㆍ미래 곧 역사에 깊이 간여하는 하느님은 해방의 행위로써 그들과 「함께 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신다. 해방은 동참과 하강과 구출과 인도 따위의 과정을 거쳐 실현된다. 이 과정들은 하느님이 역사 안에서 백성과 함께 있음을 구현하시는 것이다. 세상에 예속될 수 없고 인간들에 속박될 수 없는 초월적 하느님이 친숙한 관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초월하신다. 백성과의 계약체결과 그 성취는 하느님이 당신을 초월하시는 절대적 자유의 행사에서 가능한 것이다. 완전한 자유 안에서 선조들과 체결한 계약에의 신실 때문에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들과 함께 계셨고 또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도 계실 「세상과 인간을 위하시는」 하느님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계약체결의 보증으로 항상 『나는 너와 함께 있(겠)다』(출애3、12)라고 선언하신다. 야훼는 이 선언의 단축형 이름이다. 하느님은 혼자 자존하는 분이기보다는 『함께』『위하여』현존하는 분이시다. 스스로가 신일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우리를 위하여 살아서 활동하신다.
참 하느님으로서 무상의 신들과 전적으로 다른 신이시다:『나 야훼가 시초이로다. 또한 마지막 자들과 함께 있노라』(이사41、4). 만사를 시작하고 완성하는 하느님은 시작과 끝이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해 있는 분이시다. 스스로의 힘찬 생명력과 활력으로 존재하는 하느님은 당신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하여 현존하신다. 초월적인 하느님은 인간 및 세상과의 무한한 간격을 좁히기 위해 역사 안에 들어오심으로써 당신자신을 초월하는 절대적 자유를 행사하신다. :『세상을 초월하시는 하느님은 당신의 그 위격적인 자유 안에서 세상과 인간을 돌보기 위해 당신 자신을 초월 하신다』(A 다이슬러). 원래 근접할 수 없는 하느님은 「강한」분(「엘」)이시지만 백성의 생활에 동참하는 현존과 억압받는 백성을 해방하는 위업을 통해 역사의 주인으로 나타나신다. 이모든 일은 야훼가 당신자신을 초월하는 절대 자유의 행사로 인해 이루어진다. 야훼는 온전히 자유로운 분이시므로 완전한 주체(「나」이고 당신 자신을 초월하여 역사 안에 개입함으로써 인간과 친숙한 관계를 맺고(「함께」)해방의 위업을 성취하신다(「있다」).
주권과 영광
야훼는『자비와 은총의 하느님』(출애34、6~9)이시다. 좀처럼 화내지 않고 사랑에 넘치는 야훼는 아버지다운 자비를 보여 주신다:『야훼는 은혜로우시며 …우리의 죄를 멀리 치우시고 아비가 자식을 어여삐 여기듯이 하신다』(시편103, 8~13). 베푸시는 자비가 너무 커서 백성에게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심으로써 주권과 영광을 드러내신다. 주권은 인간 존재의 심층에까지 미친다:『야훼여 당신은 나를 환히 하십니다』(시편139, 1이하).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관장하는 야훼의 주권은 모든 곳에 미친다.
야훼의 영광은 세상의 악과 제신들을 제압하는 권능에서, 또한 불성실한 백성의 죄악을 심판하는 권한에서 드러난다. 이 주권과 영광은 백성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정화시켜 거룩하게 하려는 것이므로 당신에게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영광은 백성과 맺은 계약을 충실히 지켜나가는 은총과 자비에서 더욱 빛난다. 『어미는 혹시 자기 젖먹이를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으리라』(이사 49, 15). 그 영광은 백성을 자식처럼 여기는 부성에서 더욱 드러난다:『당신이야말로 우리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른다 해도 …당신 야훼께서 우리의 아버지 이십니다』(이사6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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