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됐으면 좋겠지요.』에 띠엔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넌 꼭 의사가 될거다.』
피에르는 엄숙하게 대답했다.
기차간에 오른 피에르는 트렁크를 얹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에띠엔느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른의 얼굴! 그 어린 두 눈동자에 서리는 커다란 슬픔.. 피에르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다시 돌아올게! 다시 돌아올게!』
소년은 기차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두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것이 견디기 어렵다는 듯.
『에띠엔느 뛰지말아 에띠엔느…』
피에르는 떠나온 「빠리」가 온통이 슬픔과 사랑에 찬 소년의 얼굴이 되어 버렸다.
소년은 플랫트폼이 끝나는데서 우뚝 서더니 두 손을 모으고 움직이지 않았다. 소년의 어깨가 들먹이는 것이 보였다. 기차가 모퉁이를 돌아서자 그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피에르는 혼자 조용히 울 수 있었다.
피에르는 방문을 닫았다. 베르나르는 미소지으며 일어나 문을 다시 열어놓았다.
『이것이 규칙이네…침묵을 지켜야 하는 규칙이 오늘처럼 고통스러웠던 적이 없다. 자, 이제 얘기해줘. 피에르, 얘기하게!』
피에르는 어제밤 벌써 연습을 해두었다. 베르나르가 떠난 이후의 일을 자세히 얘기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하겠나?』
『글쎄 한가지 생각이 있긴 하지만…아니, 계획은 금물이지요! 하루 하루 사는거요. 계획을 세우는 것은 주교님들이 할 일 이지 우리가 아니니까』
특히 하느님께서 계획하고 계신거야 베르나르의 얼굴은 예전보다 더 수척해 있다.
『처음에는 베르나르, 다음은 피에르 이제는 제라르ㆍ이 모든 것이 하나도 우연이 아니야. 나는 기도가 모자랐고 자네는 「행정」이 문제됐어.제라르는…아직 모르지. 그러나 적어도 이 두가지 함정은 피할수 있게 됐네. 우리의 경험이 헛되진 않았어. 우리의 성공보다도 우리의 실패가 더 유용한거지.
아버지 집에는 여러가지 거처가 있느니라, 이것이 우리의 위안이고 회답이야.』
『베르나르, 여기서 행복하오?』
『아주 행복해, 문제는 기쁨의 방향을 발견하는 것이야. 끝까지 따라가는 것은 쉽지만 우선 발견하는 것이 어려워…』
『내 기쁨의 방향이 여기로 향하지는 않을 것 같소.』
피에르는 미소지었다.
『기다려보게. 우선 우리하고 며칠 지내봐. 우리의 평화가 자네를 사로잡으면…. 자, 자는 시간이야. 우리의 독방들은 모두 안마당을 면해있는데 그 한가운데 돌로된 십자가가 있지. 자네 방은 불행히도 바깥으로 면해있지만 맡이야. 그러나 밤낮으로 불타고 있는 높은 아궁이같은 불빛들을 바라볼수 있을걸세. 잘자게, 피에르 주 안에 편안하길!』
새벽기도를 마친 베르나르는 피에르의 방에 들렸다. 그러나 복도를 들어선 그는 방문이 활짝 열려있고 방이 비어있는 것을 알았다.
같은 시간에 「짜니」에서는 에띠엔느가 혼자 눈을 떴다. 호밀 이삭이 소매에서 자라니 그를 깨운것이다. 마치 가까운 친구의 손길이 어깨에 놓이는 것처럼 에띠엔느! 에띠엔느! 일어나!
『내가 필요하다. 피에르 신부님에게 내가 필요해 그런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렇다. 피에르는 이 시간에 고요히 잠든 정거장 앞에 서서 아직도 망설리고 있었다. 버림받은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해준다? 아니면….
기차의 울부짖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싸니」에 도착한 날 밤에 듣던 소리와같은 울부짖음. 에띠엔느의 울부짖음.
그런데 그 울음에 응답하지 못했지!
그렇다. 그의 태도는 결정되었다.
어두운 밤을 택하고 추운 겨울을 택했다. 하대받는 어린이들 편을 택했다. 햇볕속에 자유로이 뛰는 어린이에게는 덜 필요하다. 그 어린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을 가르쳐줄 수 있겠지. 그의「기쁨의 방향」은 가장 불행한 자들에게로 향한다. 그는 확신을 할수 있었다. 휙 돌아서 정거장에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그는 이 길을 잘 알고있다. 새벽이면 도착할 것이다.
베르나르는 활짝 열린 방문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고 있었다.
에띠엔느는 침대위에 앉아 갑자기 슬픔이 북받쳐 올랐다.
피에르의 눈에는 길과 철책 건물들이 낯익었다. 건물이 좀 더 높아지고 철책이 더 많아졌을 뿐이다.
유년시절의 풍경속을 오래간만에 걸어가는 그는 어쩐지 거북했다. 마치 적이 점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마을을 걸어가듯 빈성(城)안을 거닐듯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가고 있었다.
사고가 있던 그날 밤 어린 피에르가 기대서 잠든 가로등을 바라보며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피에르는 고개를 들어 탄광의 갱 입구를 보았다. 시커먼 구멍, 어린시절부터 지옥의 영상으로 머리속에 새겨진 저 구멍 그는 건물쪽으로 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라가 문을 밀었다. 반백의 콧수염이 난 사람이 책상에 앉아있다.
『일자리가 있습니까?』
『갱에 들어가는 일이오?』
『네.』
『그건 언제나 있지.』
『전 아직 경험이 없습니다만…』
『그건 어렵다기보다는 힘든다고 할 수 있겠지. 다른 광부들이 곧잘 가르쳐줄거요. 이름이 뭐요?』
피에르가 이름을 말했다.
『아 북쪽 이름이군! 이 지방 태생이오?』
피에르는 창문밖으로 흐리멍멍한 하늘 황량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곳이 바로 가장 불행한 자들의 왕국이다. 프랑스의 다른 곳에서는 아침해가 빛나고 있을 것이다. 풀포기는 들사이에 돋아날 것이고 새는 우지질 것이다! 여기 지옥의 문에서는 시커먼 광부들이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자신의 초상을 당한 이들. 그들의 발밑에서 석탄먼지가 버적버적 소리를 낸다. 사이렌이 희미한 새벽공기를 찢으며 울려퍼졌다. 피에르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른다.<끝>
총 80회로「성인지옥에 가다」질 베르 쎄즈브롱 작 (남궁연 옮김 이용기 그림)을 끝내고 다음 782호부터는 독자투고인 「슬픔을 넘는 강」윤정례 作을 연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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