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차 세계 성체대회를 맞으면서 오늘을 「평화의 날」로 정하였습니다。 그것은 성체대회의 주제가 「그리스도、우리의 평화」이고、오늘이 때마침 오랜 역사 속에 평화의 성자로 알려진 아씨시의 프란치스꼬 성인 축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참으로 어느 때보다도 평화가 갈망되고 있습니다。 분열된 세계를 상징하듯 분단된 이 땅 한국에서 간절한 통일염원과 함께 평화를 호소하는 소리가 지금보다도 더 큰 때는 없었을 것입니다。무엇보다도 핵전쟁이 방지되어야 한다는 것은 전인류의 간절한 소망입니다。그런데 이것이 가능합니까?
지금의 세계정세는 외견상으로는 미ㆍ소 양진영 사이에 화해의 분위기가 싹트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세계는 분명하게 평화의 길로 가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강대국들을 비롯하여 세계의 모든 나라는 아직도 군비축소보다도 군비증강에 더 힘쓰고 있으며 핵무기 개발에 날로 더욱 많은 나라들이 주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보고서에 의하면 온 세계 모든 나라가 군사력을 위해 쓰는 돈은 매1분간 1백만 불이 넘는다하고 연간 총액은 5천억 불이라고 합니다。 이는 발표된 군사비용이고 실제는 그 2배가 넘는 1조불이라고 합니다。
1조불!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큰돈입니다。설령 5천억 불이라고 하더라도 만일 해마다 그 돈으로 평화적 목적과 구호자금으로 쓴다면 그 돈은 아직도 절대 빈곤 속에 굶주리고 있는 전세계 5억이 넘는 기아선상에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고도 남는 돈입니다。 그런 막대한 돈을 오늘의 세계는 인간구제에 보다도 반대로 인간을 죽이는 무기에 투자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때문에 교황성하를 비롯하여 뜻있는 분들이 거듭거듭 평화를 부르짖고 또한 군축을 호소하고 있지만 세계는 아직도 여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무기가 우리의 평화를 지켜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상황에서 북한의 태도가 날로 호전적이요 군비확장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평화는 군사력 증강으로써만 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미ㆍ소 양진영이 최근에 보이는 화해무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군비경쟁을 여전히 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서로 칼을 갈면 언젠가는 서로 칼을 쓰기 마련입니다。
무력증강은 우선은 평화유지를 위해 필요하게 보여도 결국엔 평화와는 정반대되는 전쟁준비가 되어버리고、그 결과는 모두의 죽음과 멸망이 되고 맙니다。 참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만도 아니고 물리적인 힘의 균형만도 아닙니다。
더욱이 전제적 지배로 말미암은 안정을 평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평화는 죽음과 침묵、공동묘지의 평화입니다。
참평화는 모든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자유를 누리고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인간답게 숨 쉬고 살 수 있을 때 그때 그곳에 있습니다。 그럼 이제 이같이 절대적이요、엄숙한 지상명령인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이런 기념식을 가짐으로써 족하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우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야할 것입니다。그럼 그것이 무엇입니까?
모두가 평화를 갈망하면서도 평화가 없는 것은 우리가 서로 나눌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와 나눌 줄 모르고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와 나눌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이 서로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서로 사랑하고 나눌 줄 안다면、서로 형제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잘못을 용서할 줄 안다면 우리는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사람이 되어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하느님이신데도 우리 인간을 죄의 타락과 죽음의 구렁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을 비우시고 낮추셨으며、우리와 똑같이 비천한 인간이 되시고、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지시고、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고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성체성사에서는 우리의 생명의 양식、우리의 밥이 되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가 잘나서입니까? 아닙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으로서 그분이 우리를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참으로 살줄 안다면 그리하여 모든 인간을 그리스도와 같이 형제로 받아들일 줄 안다면 그리고 우리 서로 가진 모든 것을 나눌 줄 안다면 우리는 분명히 평화를、참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의 문제인 지역감정、빈부의 격차도 해소될 것이고、우리의 분단된 조국통일도 이룩할 것입니다。 나아가 온세계의 평화의 역군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그리스도、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하는 제44차 세계 성체대회가 목적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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