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중요성
■제찬=무속ㆍ불교ㆍ유교의 제찬에서 제물(음식)은 하늘과 땅이 베풀고 인간의 노동이 곁들여서 된 것이고 생명의 근본인 초월적 실재와의 통교의 탁월한 매체다. 사람이 정성들여 봉헌하면 초월자의 축복이 그 위에 내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나누면서 그 축복에 참여한다.
■성찬=예수의 최후만찬에서 빵과 포도주는 생명의 유지를 위한 일상의 양식과 공동체를 살려주는 잔치의 음식이다. 빵과 포도주는 찬양의 제물로 하느님의 선물이 되고 그분의 현존을 의미하게 된다 .오늘날 미사성제서 예수 몸과 피로 실체적 변화(實體的變化)를 일으키는 빵과 포도주는 그것을 먹고 마시는 사람의 생명이 그분의 것과 동일한 것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하늘과 땅 잇는다
■제찬=무속의례는 덕을 통해 갈등과 고통의 세계, 곧 구원이 없는 세계에서 재수ㆍ안전보호ㆍ생존의 보장 등을 초인간적 존재로부터 받는 것이다.
불교의 의례에서 불전공양은 불(佛)에게 봉사하고 가호를 얻고자 하며, 범부의 불격화(佛格化)와 불(佛)이 유한화가 이루어져 주체와 객체가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유교의 제사는 보은(報恩)과 보본(報本)의 행위로 신명(神明)이 흠향한 음식을 서로 나눠먹음으로써 인간은 신명과 통교하게 되고 생명의 활력을 얻는다. 이같이 음복(飮福)은 우주적 대생명과 교감의 기회이며, 그 결과로 인간은 소속감과 뿌리의식을 깊이 하게 되고 자신의 삶이 신명들께 직결된 것임을 느낀다.
■성찬=예수가 주는 빵과 잔은 그것을 주는 분과 받아들이는 사람을 연결시켜 예수 생애의 신비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만찬에서 예수는 제자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당신의 죽음과 하느님안의 삶을 재현시키는 당신의 공동체를 형성케 하는 깊은 염원을 가졌다 .예수의 염원은 오늘날 공동체의 성찬례에서 빵과 포도주를 매체로 이루어지며, 동시에 성찬례는 하느님과 만남의 시간을 제공한다.
사람과 사람 잇는다
■제찬=공동식사와 대동음복으로 요약되는 대동잔치인 굿은 삶의 갈등과 모순에서 생겨나는 불운과 재앙에 공동으로 해소 노력을 기울이게 하는 연대적 집단 치유의 과정으로 보인다. 의례적 공동식사인 대동음복은 인간과 인간사이의 한이 풀리게 하고 인간 상호간에 조화를 회복시켜준다.
불교의 공양은 우주안의 모든 생명체와 일체 감을 사는 기회다. 인간 존재는 근본적으로 평등하고 상호 공양하는 공덕을 쌓음으로써 우주안의 모든 존재와 통교하고 인간 본래의 면목을 찾게 된다.
유교에서 제물의 음복은 제사 공동체의 친교와 유대를 강화해 주다. 조상제사에서는 친족들이 동일한 근원, 동일한 얼과 기(氣)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여 어떤 일체감을 느낀다. 음복은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야 하는 나눔의 상징이다.
■성찬=성찬에의 참여는 실제 나눔의 생활에로 나아가도록 촉구한다. 나눔은 당신 스스로를 준 예수에게 일치하는 것이고 또한 형제들과의 일치이며 많은 사람을 위한 개방된 삶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성찬은 빵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상호 섬김이 내포되어야 하며, 신앙인의 이중적 관계, 곧 하느님과의 관계와 형제들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다.
맺음말
■우주적 대 생명과의 교감
제찬에서 음식이 있다는 것은 생명이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음식을 초월자에게 바치는 것은 이 축복을 의식하고 초월자를 우리네 세상에 현존시키는 행위다.
성찬에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면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상기시키고 그것을 나누어 먹는 사람에게 그분 안에 하나 되는 생명을 체험하게 한다.
■푸짐하고 정성스런 마음
제찬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굿판에서의 푸짐한 음식과 제사 때 정성 드려 차린 푸짐한 제상이다. 그 반면 성찬에서 사용하는 빵과 포도주는 실용주의적 편의 위주로 된 빈약하기 짝이 없는 음식이다. 그것은 한국인에게 영약(靈藥)으로는 보일지언정 먹고 마시는 음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 하느님, 그리고 이웃과의 풍성하고 정성스런 친교 체험이다. 통교에 임하는 한국 사람의 정성과 관대함의 심성은 당연히 성찬의 의례 안에 흡수되어 하느님과 이웃과의 통교체험의 장이 되어야 하겠다.
■우주적 대생명은 주고 나누는 생명
제찬과 성찬을 공통되게 지배하는 언어는 초월자는 주셨고 또 주신다는 것이며, 주시는 분과의 통교를 즉시 나누는 행위로 표현된다. 주고 나누는 삶은 시간과 장소, 종교적 신념의 유무, 종파와 교파를 가리지 않고 이 보편적 구상과의 관계 안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보는 것은 하늘과 땅과 인간노동의 산물은 무엇이나 우리 스스로를 주고 나누는 삶의 현장일수 있음을 말한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