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김대건 신부님의 약력을 소개하였거니와 이번에는 그 님의 일생공적중 초인간적 위대성과 숭고한 그 성덕 몇 가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시성에 대한 요소가 되고 우리들의 이지와 판단에 새겨져 범국민적이요 나아가서 세계적 성웅으로 추앙토록 촉진하는데 원동력이 될 줄 믿는바이다.
그님은 비록 짧은 일생으로 마쳤지만 그 당시 세계정세와 우리나라의 형편을 남달리 동찰 주시한 그 정신과 사상, 포부와 경륜, 기백과 용단성은 청사에 빛날 것이며 천추만대로 만백성의 숭앙대상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님의 성덕과 장렬한 순교정신은 가톨릭 2천년사의 가장 위대한 순교자와 어깨를 같이 할 것이며 그 애국애족의 열정은 유구한 우리 역사상에 나타나있는 많은 순국열사들에게 뒤지지 않을뿐 아니라 도리어 쇄국주의, 사대사상, 고루한 봉건제도로 병든 조국의 부패한 보수정책에 신사상 신문화의 횃불을 들고 패기있게 대항하던 혁명투사로서 진리와 영원한 복지의 신생명을 겨례에게 전해주기 위하여 구사일생의 청춘을 제물로 바친 일은 다만 한민족 한국가의 숭상대상이 아닌 세계적 성웅으로 존승될 최고차원의 애국애족의 얼일 것이다. 이제 그님의 위대성을 간명 용이하게 알기위하여 인간면과 신앙면으로 나누어 적어보기로 한다.
▲인간면의 위대성
소년시절의 그 인간면은 오동근신한 품이절도에 맞았고 바르고 맑은 지조를 지킴에 있어서 홀연한 태도는 덕목을 따져가면서 자율해 나가는 성현의 기틀이 완연하였다.
청년이 되면서부터의 인간면은 어려운 고비마다 그 영재가 드러났고 크고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며 사람과 사물에 대한 통찰력과 분석 비판력이 명민 정확하였고 사태를 제어함에 있어 그 지모가 그릇침이 없었고 무슨 난관이던지 돌파하는 용단성에는 맞설 적이 없었다. 이러한 모든 위대성을 그의 활약과 관계했던 내외극 저명인사들의 증언과 그를 사형에 처하던 조정의 태도로 넉넉히 찾아볼 수 있다.
그의 활약면에서 몇가지 점을 살펴보면 당시 세계적으로 강국이었던 프랑스 해군제독의 변심을 대담하게 박차버리고 독자적 활약의 길을 선택하여 2년반 동안 수록으로 몇만리, 지역으로 샹하이ㆍ요동ㆍ남북 만주ㆍ몽고ㆍ멀리 노령 가까이까지 종횡하던 그 패기와 용감성은 말할 것도 없고 상대했던 서양인들과 중국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사물을 분석하는그 뛰어난 비판력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그 예술적 기교 등등은 고등교육을 받은 유럽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어『학식과 교양이 겸비한 훌륭한 대인물, 6개국 말을 하는 탁월한 사교가, 도대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가사담한 신비적 존재』등등 경이적 찬사를 받았고 그를 사학괴수로 심문하던 정부요로 대신들은 그를「소중화의 공자」라고 까지 찬양하기를 서슴치 않았고 당시 조선교회를 다스리던 페레올 고 주교는 김 신부 순교한 것을 애석히 여기면서 본국「빠리」대신학교 총장에게 보낸 서한에『…前略…그가 학창시대에도 남보다 사상이 뛰어났고 또 신부가 된 후에 그 열렬한 신앙 근실하고 그 구변으로 처음부터 모든 교우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성직봉무에 있어서 우리의 상상과 기대를 초월하리만큼 충실하였다. 만일 몇 해만 더 경험을 얻었더라면 과연 그가 조선 사람인가 의심할만큼 훌륭한 신부가 되었을 것이다. 과연 그에게는 어떤 일이던지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고 그 성격이나 일에 민첩한 그 기술 그 지식 그 어느면으로 보든지 훌륭한 성공을 기필할 수 있었다.
참으로 그를 잃은 것은 현 조선나라의 큰 재앙이요 무엇으로든지 대상못할 손실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김 신부 자신도 옥중에서 고 주교에게 보낸 서한에『저들은 지금 나를 무슨 큰 학자, 한 훌륭한 대인물로 간주합니다. 오 가련한 인간들!』하였고 고 주교가 옥중에서 보낸 김 신부의 편지를 받고 본국에 보낸 서한에『김 신부가 옥에 갇혀있는 동안 좌우포장은 물론 많은 고관재상들의 뜨거운 동정과 두터운 애정을 한몸에 모았으므로 저들이 국왕에게 저를 살리자고 간청하며, 김 신부가 옥중에서 친히 그린 만국지도 한장을 올렸더니 국왕이 매우 만족히 여겨 저들의 소청을 막 들어주려하는데 마침 불국 제독의 궤서사건으로 인해 김 신부 처형의 계기가 되었다…』하였다. 그의 일개 사학죄인에 대하여 40여 차의 심문과 두차례 열린 어전회의가 김 신부의 인격과 재덕을 아껴 될 수 있으면 죽이지 않고 살려 장래 국가의 동량지재로 쓰려던 아쉬움을 엿볼 수 있고, 사형을 주장하던 요로재상들에 대한 국왕의 우유부단한 태도로나, 왕의 김대건 처형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지금 조정에는 두 갈래의 의견이 서로 대립되고 있사와 그 중 한 갈래는 사형을 천천히 하고자 하는 의견…』이라고 대답한 사형주창자 영의정의 증언이나 왕이 본의 아닌 군문 효수형을 선고해놓고도 김 신부 순교후에 효수는 커녕 도리어 극진한 후대로 안장시킨 사실과, 김대건을 정부에서 큰인물로 여겨 사형은 커녕 높은 벼슬에 올린다고 장담하던 좌우초장의 파직사건 등등을 보아서 인간 김대건의 인격과 자격을 넉넉히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신앙면에서 본 그 성격
그님의 학창시절부터 사제품을 받아서 그의 천직인 사제직을 완수한 모범과 재능과 인격과 자격에 대한 증언은 위에서 말한 고 주교 서한에서 본바 있고, 그의 순교얼은 처음 황해도 등산(登山) 첨사 앞에서, 감사 앞에서 불을 뿜는 호교강연을 하여 많은 사람의 심경을 울린 다음 문수한 매에도 불굴의 기백으로 견뎌내면서『이처럼 나를 매질해서 큰공을 세우게 해주시니 감사하오. 우리 천주님께서는 첨사에게 더 큰벼슬에 오르게 하심으로써 그 은공을 갚아주기를 기원한다』고 하였고. 형구를 손수 받아 자기 몸에 걸면서『어서 쳐라 사람이 한번 나고 한번 죽는 것은 면치 못하거든 지금 내가 천주님을 위하여 죽는 것은 나의 소원이니 빨리 죽여달라』하였고. 연루자를 대라고 매를 맞을때『우리 교회법에 남을 물고 들지 말라했으므로 죽어도 댈 수 없다』하였고.『형장을 겁낼 내가 아니다. 오직 속히 죽기를 원하노라』『중국같이 큰나라도 우리교를 못 금하는데 이 작은나라가 금할것이냐』『내가 내 조국에 돌오와서 교를 펴지 못한 것이 가장 원통한 일이다.』
마지막 사형될 때『나의 생명의 최후시각이 당도했다…내가 외국인과 교제한 것은 다만 우리 종교와 우리 천주를 위하여 했을뿐이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될 것이다. 여러분도 사후에 명복을 얻으려거든 반드시 천주님을 믿으시오』하였고. 사형수에게 목을 이리저리 돌려대면서『이렇게 하면 칼로 치기가 좋으냐?』『이제 예비가 다 되었으니 그만쳐라』하면서 여덟번째만에 목이 잘리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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