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1고린11、 26).
한국교회의 형제자매 여러분.
성찬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자 온 세상에서 하나로 모이신 형제 자매 여러분.
찬미예수! 여러분의 서울에 또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감사합니다.
1、 5년 전 이곳 여의도 광장에서 우리는 이 땅의 천주교 전래 2백주년 기념식과 103위 한국 순교자 성인의 장엄한 시성식을 함께 거행했습니다.
그분들은 이 땅의 아들 딸들이 얼마나 깊이 그리스도께 일치되었던 지를 말해주는 빛나는 증인들입니다. 오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은총으로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마무리 짓는 이 장엄미사를 집전하게 되었습니다. 미사성제는 놀랍게도 깊이 우리를 저 용감한 순교자들과 모든 성인들、 누구보다도 구세주의 어머니 마리아와 일치시켜줍니다. 대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모든 사람이 언제나 어디서나 성령에 의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성찬기도 제2양식 참조).
성도들의 일치는 그리스도 안에 가장 깊은 근원이 있으며 성찬례 안에 가장 충만한 성사적 표현이 있습니다. 『빵은 하나이고、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1고린10、 17). 사실 성찬례를 거행할 때 마다 우리는 저 빠스카 전날 밤 예루살렘의 다락방으로 되돌아갑니다. 교회의 성찬례 거행은 그 순간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거기서 예수께서 당신의 속량하는 죽음에 관하여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시서 빵과 포도주 형상아래 몸과 피의 성사를 빠스카 잔치의 히브리 전통 예식에 따라 제정하신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시면서 예수께서는 그것이 십자가에서 바치게 될 당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도주 잔을 돌려주시면서 그것은 갈바리아의 희생제사에서 흘릴 당신 피라고 하십니다. 그러고는 명령하시기를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1고린11、 24)고 하십니다. 사도들은 참으로 구원하는 빠스카 음식으로서 구세주의 몸과 피의 성사를 받은 것입니다.
2、 이 모든 일이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안、 사도들은 아마 어느 날 가파르나움에서 예수께서 하신 다른 말씀도 상기했을 것입니다. 당신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던 군중들을 위하여 기적으로 빵을 불어나게 하신 거기서 하신 말씀 말입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요한6、 53~54).
가파르나움의 일은 사도들에게 다락방의 일을 예비해주었습니다. 가파르나움에서 약속되었던 것이 예루살렘에서 실현되었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6、 55~56).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요 부활』이십니다. 이스라엘의아들 딸들은 사막에서 하느님이 마련해주신 만나를 먹었지만 그런데도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반면에 성찬의 빵을 죽음보다 강한 생명의 샘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찬을 통하여 계속해서 생명을、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주고 계십니다. 바로 이것이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요한6、 57)하신 예수님 말씀의 뜻입니다.
3、 이 모든 것이 제44차 세계성체대회의 핵심에 자리해 있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의 이 모임은、 새 삶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바로 교회의 본성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전례헌장41). 제단둘레에 한마음으로 모여 기도와 감사를 드릴 때、 온교회가 그 머리요 그 구원자이며 그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하나인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성찬례를 통하여-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를 통하여-존재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온 교회가 오늘 여기 있음은 성체안의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기 위함이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해주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듣기 위함이며、 우리네 죽을 존재의 가장 깊은 굶주림、 곧 하느님 홀로 충족시킬 수 있는 세상의 생명에 대한 굶주림을 충족시켜주는 생명의 빵을 나누는 교회의 경험을 깊게 하기 위함입니다.
Statio Orbis-이 세계대회에서 온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진리에、 정의에、 평화에、 생명 자체에 목말라하는 모든 이와 함께 「생명의 빵」을 나누겠다는 그 결의를 새삼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모름지기 죄 많은 인류와 거룩하신 하느님 사이에 또 인류 가족의 일원인 자신들 사이에 실제로 화해의 도구가 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성찬은 교회의 일치의 성사입니다. 바로 교회자체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의하여 일종의 성사、 즉 모든 인류의 일치의 표지이자 그 일치를 달성하는 수단인 것입니다(교회헌장1참조).
4、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는 말씀이 이 대회의 주제로 선택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도의 선포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이전에는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를 말미암아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서로 원수가 되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에페2、 13~14).
여기서 사도께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마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고 있던 예루살렘 성전의 담장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 인류 가족을 갈라놓고 있는 담장과 장벽이 얼마나 많습니까? 갖가지 분쟁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계 도처의 여러 나라에서 불신과 적대의 조짐들이 얼마나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동과 서가 갈라지고 남과 북이 갈라져있습니다. 이들 분열은 역사와 이데올로기 분쟁의 유산입니다. 흔히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없었던들 서로 평화로이 사이좋게 살기를 원한 사람들을 갈라놓는 것입니다. 한국도 분단의 비극이 그 특징을 이루어、 한국민의 삶과 성격에 갈수록 더욱 깊이 사무치고 있습니다. 갈라졌으나 아직은 평화와 정의 속에 하나가 될 수 없는 그런 세계의 상징적 존재가 한민족인 것입니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있습니다. 참평화-세계가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샬롬-그것은 하느님 사랑의 무한히 풍부한 신비에서 영원히 샘솟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어 세상을 당신께로 화해시키셨다』(2고린5、 19)고 바울로 성인이 적고 있는 그 『신앙의 신비』(1디모3、 16참조)에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빠스카 신비가 모든 악과 모든 분열을 극복하는 생명과 사랑의 힘을 현존하고 실현되게 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탄복할만한 여러분의 신앙의 선조들은 『그리스도 안에서는』모든 인간이 다 같이 존귀하고 다 같이 애정과 배려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치 사도행전에 나오는 첫 그리스도인들처럼(2、 42~43참조) 그들은 형제자매로서 살고자 당시에 감히 범할 수 없던 반상의 계급장벽을 과감히 헐어버렸습니다. 양반 나으리들과 상놈 종들이 한 상에 모여 앉았습니다. 상민의 언어로 교리서와 아름다운 기도 가사들을 지어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새로 발견한 풍부한 지식을 나누었습니다.
자기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 삶이야말로 참으로 하나의 성찬례적인 삶、 과연 생명을 주는 빵을 쪼개는 삶이었습니다!
5、 Statio Orbis라는 이 대집회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외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속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고』 (에페2、 10)계시다고 세계 앞에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2、 14참조).
성찬에서 인류 가족에게 특별히 기여할 교회의 사명과 능력이 샘솟습니다. 성체성사는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남긴다』(요한14、 27조 참조)하시며 세상에 유증하시는 그리스도의 선물을 실제로 전달합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평화」의 성사이니、 그것은 구원하고 속량하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찬은 각자의 죄와 집단 이기주의에서 연유하는 온갖 분열에 대한 승리의 성사입니다. 그래서 성찬 공동체를 일컬어 화해된 인류의 본보기요 도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는、 제단 둘레에서 생명의 빵을 쪼개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어떤 분열、 어떤 차별、 어떤 분리도 있을 수 없습니다.
6、 제3천 년대가 다가오는 역사의 현시점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박하게 도전해 오고 있는 급선무는、 이 생명의 충만함을、 이 「평화」를 가정에서、 사회에서 국제관계들에서 나날이 살아나가는 얼개와 짜임새 속으로 실천에 옮기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네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요한14、 27)고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일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무기의 침묵만이 아닙니다. 적어도 그것은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 하느님의 사랑』(로마5、 5)이 전달되고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눈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섬김을 통하여 이 생명을 주는 사랑을 나누고자 끊임없이 애쓴다는 것과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22、 19)-그것은 곧 내가 너희와 모두를 위하여 해준 것처럼 너희도 서로 그렇게 해주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례만 거행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찬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요청하고 있습니다.
-창조된 세계에 대하여 감사드리고、 슬기롭고 책임성 있게 그것을 존중하며 나누라고.
-생명이라는 위대한 은혜를、 특히 하느님께서 당신 모상으로 창조하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신 모든 인간 생명을 그 처음부터 존중하고 사랑하라고.
-정의와 자유와 화합을 통하여 모든 인간의 양도할 수 없고 평등한 존엄성을 옹호하고 촉진하라고.
-「한마음 한몸 운동」이 본보기가 되고 있듯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생명의 빵으로 우리자신을 내어주어、 모두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하나가되라고.
7、 무릇 세계성체대회마다가、 Statio Orbis마다가 성체성사 안에 선포 되고 실현되는 복음에 대한 교회의 신앙의 장엄한 고백입니다. 『주여、 주께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하여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의 구원자이십니다.』
이곳 서울에서 열린 성체대회의 이 큰 모임에서、 아시아 대륙의 이 땅에서、 우리는 구세주의 죽음을 통하여 생명에 참여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모두를 위하여-한국을 위하여、 아시아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모두가 이 생명을 자기 안에 간직하고 또 풍성하게 간직하기를(요한10、 10참조) 빕니다.
우리 모두 서로 생명의 빵이 되어줍시다!
참 평화의 도구가 됩시다!
찬미예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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