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일이네 집을 동네에서는「은행집」이라고 부른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형일의 아버지나 다른 누가 돈을 취급하는 은행에나 다니는 줄로 잘못알기쉽다. 그것이 아니라 형일이네집 앞뜰과 뒷뜰에 늙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있는데서부터 생긴 칭호인 것이다.
그러니까「은행나무집」이라고 해야 바른 것인데 「나무」까지 제대로 부르면 길기때문에 간단히「은행집」이라고 부른다.
형일네 집은 남쪽으로 향한 산중턱에 꽤 넓게 터를잡은 한국식 기와집이다.
집 대청마루에서도 산 안쪽의 거리며 항구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일반 주택은 몰라도 정거장이나 시청을 비롯한 큰 건물들은 어느 것이 무슨 건물이라는 것을 다 알 수 있다.
은행나무 가족은 고개넘어에 있는 제철회사에 기사로 다니는 아버지와 가사를 맡고있는 어머니 그리고 국민학교 6학년인 형일이 4학년인 형철이 3학년짜리 유미 이렇게 모두 다섯 식구이다.
멀리 바라보이는 항구밖에 바다가 햇빛에 은빛으로 반짝이기는 하나 역시 겨울철이라 검푸른 물결이 강물처럼 흐른다.
은행나무집 앞마당에서는 아침부터 널빤지에 못을 박는 망치소리와 널빤지를 끊는 톱질소리가 요란스럽다. 형일이가 낡은 사과상자로 새장을 만들고 있는것이다. 형일이와 형철은 어제 시골에 있는 외가에서 돌아올때 외삼촌이 잡아준 참새 네마리를 가지고 온 것이다.
『어때 근사하지?』
형일이가 일손을 멈추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내 건 왜 이렇게 작아?』
『그만해도 참새 두마리는 문제없어』
『그래도 난 작은 것보다는 큰 게 좋아』
『뭐 크다고 다 좋은가』
『형 형기네 가서 새장틀만 가져오면 좋았을걸…』형철이가 불쑥 말했다. 형기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큰댁이다. 형철은 큰댁에서 쓰지않는 새장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래도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거면 스스로가 하는게 가치가 있는거야』
형일은 제법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렇지만…형, 그럼 큰걸 나 줘』
『병신, 뭐든지 큰 것만 좋아해 큰게 좋으면 양복도 아버지걸 입으면 좋잖아』
『그래 입을께…』
『괜히 욕심 부리지말고 못이나 사와!』
『형 못이 모자라?』
『그렇게 많이 사왔는데도…』
형철은 몹시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철은 십원짜리를 받아쥐고 대문을 나섰다. 언덕 아래로 쌩-제트기처럼 달려갔다. 피스가 어느새 형철이를 따라나갔는지 졸랑대며 앞서 뛰어갔다.
『욕심을 부려 큰걸 사오면 안돼!』
형일이가 대문밖에 나가서 소리쳤다.
『형, 새장 큰걸 나 주는 거지?』
큰길에 내려선 형철이가 언덕을 향해 소리쳤다. 큰것을 준다고는 했지만 어쩐지 안심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하고 형일은 마당에 들어와 작업을 계속했다. 대문이 삐익 소리를 냈다.
『작은걸 사왔니?』형일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작은게 뭐니?』
형철인줄로 알았더니 마당에 들어선 사람은 어머니였다.
『난 또 형철이라구…』
형일은 씩 웃었다.
『어마나 새장 멋지구나 형일은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나!』
『엄마 막 비행기 태운다』
어머니와 형일은 큰소리로 웃엇다.
『엄마, 빈 크림통 네개만 줘』
형철이가 안방 미닫이를 열고 소리쳤다.
『크림통은 뭘하니?』
『참 엄만 소식불통이야 새장에 물통이나 먹이넣는 통이 있어야잖아』
『응…그런데 네가 엿과 바꿔먹어서 있기나 하겠니?』
어머니는 경대위에 장독대의 독처럼 나란히 놓여진 화장품통의 뚜껑을 이것 저것 열어본다. 빈 것들이 있었다.
형철은 저도 모르게 노래가 나왔다. 기분이 좋다. 새장은 큰것을 가지게 되엇고 이제 크림통만 매달면 어두운 종이상자 속에 들어있는 참새들을 새장에 옮기게 되기 때문이다.
완성된 새장은 형일이와 형철의 공부방인 대문간방 책상 위에 놓아졌다.
『아빠 오시면 깜짝 놀라시겠다!』
어머니는 어린아이들이 만든 새장이 대견스럽기만 했다. 조그맣고 어두운 종이상자에서 넓고 밝은 새장에 옮겨진 참새들은 짹짹 거리며 푸드득 날기도 했다.
『아침마다 물갈아줘야 한다. 날 믿어선 안돼 알았지?』
『형 염려마 내가 얼마든지 할게』
『말은 잘한다.』
『형철이도 한다면 뭐든지 잘한단다』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이야.』어머니와 아이들은 큰 소리로 유쾌하게 웃었다. 새장 속의 참새들은 짹짹울며 푸득푸득 자리를 이리저리 옮긴다.
참새들이 이제 저희들 세상을 만난것 같이 형일은 생각했고 가슴이 흐뭇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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