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것이 영원히 나의 이름이 되리라』(출애3、 15). 인간에 의해 조금도 제약받지 않으시는 하느님이 철저히 인간의 하느님이 되신다. 그분은 인간이 있는 곳에、 그가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 그와 함께 있고자 하신다. 인간과 치밀한 관계를 맺으시려는 하느님의 위격(位格)적 면모는 그분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사실과 인간을 자녀로 삼으시는 그분의 부성(父性)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야훼는 인간과 세상을 초월하는 유일한 하느님으로서 인간과 말씀하시고 부자관계를 맺으신다.
한분 하느님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신명6、 4). 하느님의 유일성을 고백하는 이 신앙은 야훼가 이스라엘을 위한 단 한분의 신이실 뿐 아니라 신으로서도 유일하심을 뜻한다. 이스라엘 신앙의 기초인 유일신 신앙은 긴 역사를 거쳐 형성되었다. 다신론으로부터 점차로 유일신론에 이르렀다는 말이 아니라 이교도적 요소들과의 대결로 인해 이루어졌고 과감한 취사선택의 결정체로서 그 신앙이 구체화되었다는 말이다. 유일신 신앙은 물질 및 애정의 숭배、 권력의 신격화를 거부하고 배척하는 것이다. 하느님이외에 돈ㆍ재물ㆍ권력 따위를 숭상하기를 단호히 배격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에의 승복이고 그분의 권능에 자신을 내맡기는 용기이다.
『너희는 감히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 한다…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신명5、 6~9:출애20、 2~5). 질투는 부부 사랑의 배타성에서 보여지듯이 사랑하는 두 인격체 간의 신의와 결속을 지키려는 순수한 사랑의 부정적 표현일 뿐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한분 하느님의 변함없는 사랑은 일편단심의 신의를 명령한다. 야훼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전인적이고 절대적 헌신은 그분의 유일성 위에 바탕을 둔 것이다. 『질투하고 열을 올리시는 하느님』 (출애34、 14)은 온전한 충성을 요구할 만큼 신의를 끝까지 지키시는 하느님의 유일성을 인간적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당신의 배타적 유일성을 관철시키려는 야훼의 열의 그리고 그 진지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의지의 표명이다』(Aㆍ다이슬러). 하느님의 질투는 사랑의 열정을 표현한다. 이스라엘이 야훼의 신실한 사랑을 무시하고 잡신들에게 향하므로 그분의 정열적 사랑은 질투로 표현된다. 질투는 불충실에 대한 무서운 분노이고 상처받기 쉬운 애정이다. 야훼 홀로 구원하며 충만한 사랑을 쏟을 수 있고 애정 어린 배려를 기울이시므로 야훼와 같은 신은 없으며 그분 홀로 하느님이시다.
말씀
말하는 것은 인간의 공유한 행위이다. 인간만이 말의 선물을 받았다. 발설된 말은 인간의 인격적 구조를 나타낸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으로부터 말씀을 건네받았다는 깊은 체험 속에 살았다. 하느님을 말씀하는 분으로 체험하였고 그분에게 언제나 『당신』이라 부르면서 응답하였다. 말씀의 능력으로 그들은 이스라엘민족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인식하였다.
하느님은 당신이 원하실 때에 말씀하신다. 말씀하고자 하실 때에 그것을 받아 전하는 예언자는 그 능력에 압도당한다. 들은 말씀을 싫어도 전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의 말씀은 자유로운 계시일 뿐 아니라 단호하게 요구하는 통교이기도 하다. 그 말씀은 하느님의 살아 활동하심을 나타내는 표지이다. 그것은 그분의 뜻을 표명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명이고 사건이며 예언이다. 말씀이 곧 사간이다. 하느님에게는 온전히 언행일치이다.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그분은 예고하고 치유하며 인도하신다. 예언은 미래를 향해 능력을 발휘하는 말씀이다. 창조 말씀은 그분의 부르심이고 「기원」이며 존재를 위한 질서이고 명령이다. 『빛이 생겨라』 『땅은 온갖 동물을 내어라』(창세1、 3ㆍ24). 말씀대로 이루어졌다. 말씀은 모든 것을 있게 하고 존속시키는 능력이다. 하느님은 부단히 또 자유로이 발설하는 말씀을 통하여 모든 것을 다스리고 창조할 만큼 「전적으로 다른 분」이시고 동시에 그 말씀을 통하여 가까이 현존하신다. 말씀 안에서도 야훼의 초월성과 내재성이 부각된다. 말씀하시는 야훼는 인간과 대화、 교류하는、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이다.
얼굴과 마음
히브리인들은 우리의 「위격」에 해당되는 개념들을 알지 못한다. 내용상 그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 표현이 「얼굴」과 「마음」이다. 하느님은 능력의 말씀을 통하여 백성을 방문하고 당신 마음을 주신다. 성서에서 마음은 인간의 내면 전체를、 인식과 의지와 심정을 총칭하며 인간의 인격적 중심을 가리킨다. 마음 안에서 인간은 이웃과 하느님을 향하게 된다. 인간은 자기 마음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고 온 마음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마음은 그분의 위격성이다: 『내 마음은 내 안에서 뒤틀리고 내속은 타 녹는다』(호세11、 8): 『나는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세워주겠다』(예레3、 15:시편33、 11). 『야훼께서 당신의 영혼을 보여주셨다』(시편4、 7:31、 17). 이는 야훼가 백성을 방문하고 경신장소에서 당신을 찾아 온 이스라엘에게 은혜 베푸심을 의미한다.
그분의 총애와 축복은 그분의 『빛나는 얼굴』에서 오는 것이었다(시편44、 4:89、 6). 오늘날의 「위격」(또는 「인격」」개념이 가면과 역할과 표현과 측면을 의미하는 Persona (Prosopon)에서 연유된 것은、하느님의 위격성을 나타내는 「얼굴」표현과 일맥상통한다.
얼굴、 마음 따위의 표현은 하느님의 위격적인 활력을 증언한다. 하느님이 당신백성의 마음 한가운데에 호소하시려는 것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하느님은 인간과 서로 마음이 통하고 일치되는 깊은 인격관계를 맺으려 하신다. 당신자신과 인간의 마음이 결합되도록 새 계약을 체결 하려 하신다. 『그날 내가 이스라엘의 마음에 새 법을 새겨주어、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그리되면)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예레31、 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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