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심포지움」에서 논의된 문제들중에 필자에게 새로웠던 것은 교회안의 대화에도 콘플릭트(CONFIICT)가 뜻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콘플릭트를 우리말로 갈등으로 번역할 수 있으나 그안에는 투쟁, 논쟁, 알력, 충돌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교회안의 대화를 성공시키는데도 갈등에 대한 올바른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갈등을 무조건 회피하지 말고 갈등을 올바로 해결하려고 하는 자세는 기본적이라고 했다.
대화의 목적은 상호유대와 존경을 기반으로 의견대립을 통해 더 깊은 일치를 모색하는데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교회내에서 더 그렇다. 그래서 만일에 선각들이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던가 또는 이 차이점을 덮어놓으려고만 할 때에는 대화는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안일 무사주의는 대화 거부주의와 같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인간의 대화는 갈등에서부터 시작됨을 부인할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갈등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대화를 위한 갈등의 역할을 고찰해야할 것이고 또 이에 따르는 갈등의 해결책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갈등의 올바른 개념
갈등이란 두사람이 한개의 현실을 두고 서로 다른 관점이나 다른 욕망을 나타낼때 생긴다. 인문학에 의하면 갈등은 개인이나 사회생활을 구성하는 요소중 하나라고 한다. 인간은 갈등을 받아들여 해소해감으로써 개인역사를 만들며 사회를 조직해간다. 그리고 갈등을 토대로 새로운 행동방법을 모색하면서 역사를 개척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갈등의 종류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개인과 개인간의 갈등, 단체와 단체간의 갈등, 그리고 교회의 생활이 체험하는 바와같이 단체와 교계책임자간의 갈등이 있다. 단체와 단체간의 갈등에 있어서는 군중심리가 쉽게 작용됨으로 대화가 동결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간의 갈등과 단체와 교계책임자간의 갈등에 있어서도 여러가지 난점들이 개입되는데 예를 들어서 용어문제라든가, 상호차이점을 존경하지 않는 태도라든가, 또는 갈등을 회피하는 태도, 갈등을 좋아하는 태도 등이 있다.
자연발생적 갈등
인간생활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긴장이나 갈등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고 무조건 갈등을 회피하고 충돌을 방지하려고 하는 것은 사실상 많은 오해를 받게된다. 말하자면 갈등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겁을먹지 말아야 한다.
대화란 인위적으로 합의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생활의 주요소를 구성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진행되어야 할것이다.
이와 반대로 교회가 발전하기위해서는 항상 긴장한 가운데 충돌도 하고 논쟁도 하고 투쟁을 일삼아야 한다는 갈등애호가들도 있는데 이것도 교회안의 대화를 망쳐놓을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사실 갈등이란 본질적으로 해소를 전재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에 개인이나 사회가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병들수있기 때문이다. 생활은 그 차체가 새로운 갈등을 발생시킨다. 생활이 발생케한 갈등과 인위적으로 조직한 갈등은 서로 질적으로 다르며 해결하는데에도 상당한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대화를 수반하는 정치화현상과 교권의 역할도 갈등을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대화는 정치화 요구
대화는 반드시 정치화를 요구한다. 각자는 자기의견을 발표하고, 의견이 종합되고, 각 단체는 대표를 선출하게 되며 결론적으로 투표를 하게 된다. 대화를 일반화하게되면 교회는 자연적으로 민주주의 형태를 취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민주주의식이 모든 갈등을 올바르게 해결한다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갈등이 여기에서부터 발생될 수 있으나 그것을 겁낼 필요는없다. 그리고 정치화를 성공리에 진행시키면 각자의 참여의식을 고취시킬수 있고 또 각자의 책임감을 발휘시킬 수 있게된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대화하는사회내에서의 교권이란 권한이 아니고 대화를 조직하고 집중시키는 역을 맡는다. 교권은 대화를 유도해서 전체의견을 종합하고 최후결정을 단독으로가 아닌 전체와 함께 내려야 한다. 교권은 갈등을 해결하는 역을 가지지 않았고 분렬과 폭행을 방치하면서 갈등을 일반화하는데 전력해야 한다. 즉 갈등을 드러내고 해결방안을 같이 모색하면서 모든 사람이 융합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권이 대화에 참여할 때는 심리적인 면에서 동등감과 형제애를 발휘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교권은 교회의 일치성을 상징하고 실현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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