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이라 함은 우선 지리적으로 일정한 구역을 한정함을 뜻하며 이의 기원은 자연발생적이었다. 옛날 예수님께서는 고을에서 고을로 돌아다니시면서 전교하셨으므로 어떤 제도적으로 형식을 갖춘 본당이나 교구 등으로 설정하지는 않으셨음을 우리는 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다가 교회가 점차 성장하면서 형식을 갖추어 제도화되면서부터 본당이나 교구가 설정되기에 이르렀다 한다. 따라서 본당제도는 인위적으로 된 것이어서 장차 사회적 문화적 또는 그밖의 여건이 변경되면 능히 소멸될 수도 있고 새로운 제도의 발생도 전적으로 가능한 것이라 하겠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4세기 이후 제도화가 진행되면서부터 교구나 본당의 지리적 한계성을 규정하기에 이르렀고 중세에 와서는 교회법적으로 꽤나 세밀한 부분까지 성문화시키기에 이르었다. 그런데 본당이나 교구의 지리적 한계성은 지리적 문화적 또는 사회적 여건과 동떨어져 생긴것이 아니고 오히려 밀접한 관계밑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어떤 국가에서는 국제분쟁 문제 해결에도 교구나 본당의 한계선이 그대로 국경선으로 적용되었다 한다.
즉 남미에서 전 서반아 식민지들이 앞을 다투어 독립할때 국경선을 설정하기 위하여 양 신생국가들은 그 지방교회들의 교구나 본당의 경계선을 그대로 국경선으로 채용했다 한다.
따라서 우리는 교구나 본당의 지리적 한계선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문화적 또는 그밖의 여건에 의하여 얼마든지 변경될수 있고 새로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될것이다. 근래 우리 한국사회는 단군조 이래 최고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할 정도로 빨리 때로는 정신 차릴 여유도 없이 변화되어가고 있다. 시골에 때 아닌 고속도로가 뚫려 문명의 이기인지 흉기인지 알수없는 자동차란 괴물이 매연을 내뿜어 맑은 공기를 흐리게 할뿐 아니라 순진한 시골 청소년들의 마음마저 오염시키고 있고, 시골의 순진한 농부가 갑자기 억대부자가 되는가 하면 토지투기에 섣불리 손댔던 재벌급이 쓰러지는 등 부침성쇠(浮沈盛衰)가 극심한 형편이다. 또한 트란지스는터 방방곡곡 전기가 안가는 곳에까지 침투되어 공연히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할뿐 아니라 소비가 미덕이라는 바다 건너의 상업주의적 선전을 막뿌려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서럽게 하고 심지어는 열등감 소외감마저 생기게 하는 실정이다. 여기서 달갑지 않은 사회문제도 증가되어 성급한 사람들은 말세가 왔다고 개탄마저 나올 정도로 세상은 빨리 변하고 변하는가 보다. 그렇다고 이 세상 꼴이 보기싫다고 이 문명의 발전(?)을 외면하고 심심산골에 숨어서 백이숙제처럼 고사리만 캐어 먹고 살수도 없는 즉 현실에 도전하지 않을수 없다.
마음의 평화를 간직하고 자연만을 벗삼아 살겠다고 산으로 피하여 혼자 살수도있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 일로 우리는 현실도 피보다는 현실참여 나아가서는 현실극복을 강요당하고 있는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 교회도 한국사회의 숙명적변화를 외면할수 없을 뿐아니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즉 교회는 현실에 용감히 참여해야 한다고 사목방침을 정한바있다.
교회에서 본당을 설정하든가 폐쇄하든가 또는 관할구역을 조정함음 어디까지나 합리적으로 본당을 운영할수 있어서 최대의 능률화를 기하자는데 있다. 한국의 실정을 보면 도시의 발전은 눈부실 정도로 6.25전후에 백만정도였던 서울의 인구는 6백만을 돌파하는 기록적 성장을 이룩하였고 기타의 지방도시들도 피난민들의 정착과 이농이향민(離農離鄕民)들의 흡수로 급격한 성장을 이룩하였다. 따라서 20년 내외의 짧은 시일내에 이런 급격한 변화는 도시나 농촌에 많은 무리를 초래하였다. 물론 교회는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대처하느라고 많은 배려를 한것 만은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실정을 분석해 볼 때 본당 구역관할 문제가 전적으로 합리적으로 되었다고 말할수 없는곳이 수다(數多)하다. 원래 본당은 지리적으로 본당 구역 중심점에 위치하여 변두리의 예외적 지역을 제외하고는 도보로 쉽게 왕복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흔히는 지역적으로는 B본당에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는 흔히 역사적으로 A본당이 먼저 설정되므로 이런 무리가 생기는 것이 사실이나 이는 조속히 시정되어야 할 문제이다. 또한 도시에서는 발전의 속도가 빠르므로 그때그때에 민감하게 변화에 대처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사소한 관할구역 조정도 사전에 양당사자들의 합의에 도달해야 하고 또한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쉬운 문제는 아닌듯 하다. 일방적으로 B본당에서 본당의 관할구역 재조정을 원한다 하더라도 A본당에서 불응한다면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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