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0월5일은 어떤 의미에서 한국 가톨릭이 그 면모를 일신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 계기는 원주교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벌인 「부정부패 추방」 시위운동이다.
이날 오후 7시30분 원주교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1천5백여 명은 원주시내 원동성당에서 교구장 지학순 주교와 교구 사제단이 부정부패 일소를 위한 특별미사에 참례한 후 「부정부패 뿌리뽑아 사회정의 이룩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지 주교가 앞장선 시위대열은 성당 대문을 나서며 경찰의 제지를 받게되자 성당 마당에 그날 밤을 새우며 『참으로 매달리는 마음으로』 이 땅에 가득찬 부정과 부패 불의가 가시고 정의로운 사회가 이룩되길 기도했다.
시위와 농성은 이틀만에 끝났지만 원주 교구 신자들의 부정부패 추방운동은 교회 안팎에 커다란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세상의 「빛과 소금」을 자처하는 교회의 사회비판 기능에 대한 내적 충동이며 당연한 행동이라는 반응과 성직자 본분을 넘어선 비현실적 태도라는 일부 계층의 여론이 있는 가운데 어떻든 연속적인 호응을 몰고왔다.
3일후 서울에선 일단의 가톨릭ㆍ개신교 성직자가 역시 부정 부패추방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대건대신학생들도 교문을 나서 「정의」를 부르짖었다.
사회는 보수와 소극의 심볼처럼 여겨온 가톨릭의 이러한 움직임을 놀라운 눈으로 지켜보았고 원주교구는 일약 정의평화운동의 「메카」처럼 _스의 초점이 모아졌다.
지 주교가 가는 곳엔 언제나 눈길이 따랐고 그는 청중을 향해 가난하고 억눌린 소외된 계층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되찾을때 진정한 정의는 가능하며 이것은 곧 하느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지워진 사명임을 역설했다. 급기야 한국 주교단은 11월4일 「평신도의 날」을 맞아 「오늘의 부조리현상 전반를 극복하자」는 공동교서를 발표, 부조리현상 전반에 걸쳐 날카로운 메스를 가하기에 이르렀다.
이 교서는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유산받은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고 전달해야 할 사명을 받았음』을 선언하면서 『교회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대변자』로서 『공동선과 인간 존엄성 회복』에 앞장설 것을 천명했다.
이후 오늘날까지 「정의평화 구현」은 한국 가톨릭의 중요한 「테제」로 등장 위정자와 국민을 향해 끊임없는 호소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교회에 대해 순수한 양심을 지키고 따르는데 현세적 고통과 희생이 있더라도 과감할 수 있는 자체 정화를 부르짖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교회 비판기능을 통한 사회 참여에 일대 전환점을 이루고 도화선 역할을 한 원주교구 「부정부패 규탄시위」를 처음엔 단순한 「원주 문화방송」 운영을 둘러싼 항의로 오해하는 측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양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정의의」 외침임을 알게 되었다.
「원주 문화방송국」은 1970년 모재단 장학회와 원주교구가 60대40 투자비율로 공동 설립, 71년 3월 운영실태를 감사한 결과 세금조차 내지 않은 부정이 드러나 교구는 운영을 맡고 있는 그 장학회에 대해 수차 시정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권력을 내세워 위협하는 치사한 반응』뿐이었다.
이에 교구 성직자와 평신도 대표는 9월20일 연석회의를 열고 교구가 투자한 1천7백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권력만 믿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제도화된 불의에 근본적으로 도전키로 결정을 보았고 이에 따라 1천5백여 성직자ㆍ수도자ㆍ평신도가 흔쾌히 참가한 일대 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동안 당국의 눈길을 의식한 원주시내 일부 유지들은 천주교 신자들과 접촉을 꺼려 「어쩐지 외로운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고 어느 평신도 지도자는 그때를 회상한다.
그 후 2년 남짓 지내는 동안 원주교구의 「정의를 위한 투쟁」은 양상을 달리한 가운데 꾸준히 전개되어 오고있다.
그것은 교회가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억눌리고 소외된 대중과 정신 경제면에서 협동, 그들이 구체적인 생활의 진보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되찾게 도와주는 것이다.
지 주교는 현대교회의 사명은 마치 「모세」가 에집트의 질곡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오듯 그들을 억압과 불의로부터 해방시키는것 이라고 하면서 첫째 정치적 불의에 대한 인간 존엄성 수호 둘째 조직화된 경제 불의에 대한 투쟁 셋째 소외계층의 단합과 연대의식 고취 넷째 무감각을 극복, 참여와 희망을 갖게하는 네 가지를 투쟁목표로 제시한다.
지 주교는 10월5일 시위가 정치 불의에 대한 도전이라면 지금 전개하고 있는 협동화 운동은 유대를 통해 경제 불균형을 극복하고 나아가 그들을 공동의식에로 끌어내려는 시도라면서 「원주교구 재해 대책사업」이 철저한 사전교육 위에 「참여와 협동」을 내세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소외계층이 현세에 팽배한 이기주의, 관의무능, 부패 등 주변의 부조리 현상에 입을 열 수 있을 때 정의를 위한 투쟁은 특정대상이 아닌 사회 부조리 전체를 상대로 한 전체운동으로서 종국의 목표인 「평화」를 달성케 될 것이며 그것은 곧 원주교구의 목표라고 말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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