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평화를…
9월 25일자「가톨릭 신문」기사와 함께 대구 남산동 백백합 보육원의 마리 뽈 수녀님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오늘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글월을 드립니다.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감사의 인사로써 오늘은 저의 첫 아프리카에서도 시골 공소를 다녀온 경험을 소개드립니다.
나는 자동차가 없어서 시골 공소를 못가고 애태우고 있던 중, 시골 공소를 다니시는 스페인 신부님의 배려로 예수님의 첫 공생활 시작을 묵상하며 첫 공소를 다녀왔다. 한번 나가면 일주일을 머물기 때문에 신부님의 짐이 토요타(TOYOTA)에 가득 실렸는데, 또 저의 적지 않은 짐들을 가져가니, 신부님은 기가 차지만 눈썹하나 찌푸리지 않으시고 『우리 둘이 모두 하느님 위한 일을 하는 것이니, 무리하게 짐을 실어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하며 꾸불퉁 꾸불퉁 한 길을 1시간 이상 무사히(?)달려 「동굼부」라는 마을에 나를 내려놓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길』하면서 신부님은 더 멀리 험한 길을 떠났다.
성당(공소)뒤 조그만 공간에 짐을 풀어놓으니 주민들이 차례로 인사를 오며 환영하였다. 어린이들은 백인이 무섭다고 울고 달아나고 했지만
해가 자면 즉시 캄캄해지는데, 머얼건 죽을 간단히 끓여먹고 나니 또 마을 주민들이 몰려 왔다. 말도 서툴고, 본래 입담도 없는 나의 둘레에 머물다 가는 이들의 고운 마음. 칠흑 같은 하늘에 나의 머리 위에 별들이 쏟아질듯 영롱한 밤이었다. 다음 날은 「바오로 종도 회개의 날」. 공소회장이 근사한 예식을 진행하고, 신자들과 함께 성체를 영하며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바오로 종도 회개의 날」나는 첫 공소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감격의 날이었다. 물을 한잔 끓여 먹고 나니 치료해 달라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끝나기도 전에 전교회장이 유치원생 정도의 30명 가량의 코흘리개들을 데리고 오서 지도해달라고 했다. 『오! 하느님, 헐벗고 꾀죄죄한 이 까만 아이들을 보소서』하며 기도ㆍ인사법ㆍ노래ㆍ춤을 함께 하면서 1시간 이상 이이들과 놀아주었다. 이 일이 끝나기도 전에 처녀들ㆍ부인들이 수예ㆍ재봉ㆍ뜨개질ㆍ위생교육 등을 듣고자 빈손으로 모여들었다.
이 나라 부인들은 들에 나가서 많은 일들을 한다. 12월, 1월은 특히 커피 수확의 계절이기 때문에 바쁜 때인데 10명 이상은 오후에 일하러 가니까 오전에 가르쳐 달라고 했다. 12시가 되어도 가지 않고 (그들은 점심을 먹지 않았다) 열심히 하는걸 가라고 떠밀듯이 돌려보내고, 기진하여 이것저것 조금 끓여먹고 치우고 돌아서니 오후팀이 모여왔다. 뙤약볕 아래 오전 내내 일하다가 지쳐서 돌아와도 먹을 것이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배우겠다고 모여오는 그들을 볼 때, 하느님 일 때문에 지칠 줄 모르셨던 예수님을 묵상하며 나 자신의 고단함을 감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참다가 공소회장께 변소가 어디냐니까. 30기구 정도 2백~3배명 주민이 사는 마일인데 변소(뒷간이 맞는 말임)가 하나 있다기에 그것도 수소문하여 겨우 찾아가니 숲속에 빨마가지로 빙 둘러 얼기설기 쳐있는 것이 전부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 기막힌 현장(?) 변소 안에 벌떼들이 왕왕거리는 상황이었다. 오! 하느님
끓는 듯한 태양아래, 메마른 바람까지 모래를 날리며 불고 파리 떼가 주위를 맴돌고 작은 벌레들이 침을 놓는 상황. 입이 마르고 혀가 말라 움직이지 않는 정도의 목마름과 불편한 잠자리, 부족한 음식. 이 모든 것이 나를 괴롭게 하기 보다는 기쁨의 샘이 되었다. 아마, 아직 지독한 고생의 맛을 덜 보아서 하는 말이겠지만.
다음날 신부님은 낮에는 성당 짓는 일을 하고 해질녘에 다른 공소로 미사 드리러 가면서 나를 미사에 데려가기 위해 일부러 왕복 30km 아프리카의 험한 길(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을 달려 오셨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몇 명이 모이든 상관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려 미사를 봉헌하고, 캄캄한 밤에 신부님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셨다.
하느님 때문에 머리가 약간 부족한(?)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하느님의 크심을 묵상했다. 하느님이 만드시고 사랑하시는 이 까만 사람들, 하느님 때문에 이들을 위해 사랑하는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여기 와있는 멍청한 선교사들, 하느님 때문에 아무것도 바랄 것 없고 멍청한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뒤에서 도와주는 숨은 은인들이 이 세상에 있음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며 하느님 하시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요.
이렇게 5일을 지내고 신부님이 돌아오는 기회를 기다려 돌아왔다.
두 사람 모두 그동안 씻지 못해 산적 같은 모습인데도 돌아오는 길에는 하느님 찬양하는 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돌아왔다.
정신적ㆍ물질적으로 완전한 빈손인 상태에서 주님의 손만 바라보며 사는 가난한 선교사의 삶, 주저앉고 싶은 순간들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 하느님의 자비만 바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주님의 참 평화를 빌며, 뜨거운 태양 아래서 여러분께 감사 감사드립니다.
1989년 9월 26일 요세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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