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제 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는 막을 내렸다. 대화주제인「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에 담긴 정신은 우리들의 실천 과제로 남았다. 이에 본보는 세계성체대회이후 독자들의 평화실천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이번호부터 10월4일 평화의 날 행사중 전세계를 향해 호소한 각계각층 사람들의 「평화에의 갈망」발표문을 하나씩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저는 「공해」라는 단어가 저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울산ㆍ온산주민 4만 명이 공해로 집단이주한다는 신문기사도 저에겐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남의 일이라고만 여겨왔던 공해가 얼마나 심각한 현상이며 바로 나의 일임을 확인시켜주는 일이 생겼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호흡하며 살아온 제가 너무나도 청천벽력과 같은 진폐증에 걸린 것입니다. 평생을 시커먼 탄가루에 뒤덮인 폐를 안고 숨쉬기를 두려워하며 살아가야하는 불치병에 걸린 것입니다. 탄가루를 잔뜩 뒤집어쓰고 일하는 광부들에게 많다는 직업병인 진폐증이 서울 도심지 한복판에서 남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저에게 걸렸다면 그 어느 누가 믿겠습니까? 이 거짓말 같은 사실을 말입니다. 의사가 보여주는 시꺼먼 저의 폐조각을 보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삼표 연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저와 똑같이 연탄공장 부근에 살며 설마하고 있을 저의 이웃들을 위해 이를 사회에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회사의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심지어는 저의 뒷조사까지 하고 탄광촌에서 굴러먹던 술집여자라는 등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인신공격을 하는 기업의 파렴치함에 저는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습니다. 공해추방 단체를 찾고 주민들에게 자신의 건강을 자신이 되찾지 않으면 그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서울에서만도 17개 연탄공장이 있고 이 공장들도 삼표공장처럼 탄가루를 마구 날려 보내고 있음을 확인하고 가장 시급한 것이 주민들의 정기검진이라 생각되어 이를 서울시에 계속 요구하였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를 방문하고 항의 시위를 하여 힘겹게 주민검진을 받아냈고 그 결과 서울시에만도 모두 14명의 진폐증 환자가 더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공해천국」인 우리 땅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행정당국은 환자들에게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고 주민들 앞에서 시장이 직접 한 약속은 그야말로 빈공 (空)자 공약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서울시는 누구를 위해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탄가루 공해뿐이겠습니까? 매일 마시는 수돗물, 늘 호흡하는 공기, 식탁에 오르는 음식물 등 어느 하나 우리를 위협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자손들에게 오염된 기형 국토를 물려줄 것인지 아니면 쾌적한 환경을 물려줄 것인지는 바로 우리의 공해에 대한 관심정도에 결정될 것입니다.
비록 저의 몸은 불치병으로 고통스럽지만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도 말귀만 알아듣는다면 아무리 어린아이에게라도 공해에 대한 얘기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저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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