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하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충청도 양반이다. 충청도의 이름난 양반이 많이 있으나 특히 시제(時祭)를 잘지내는 양반이 있다고 하여 두어해 전 음력으로 10월에 충청남도를 갔다. 이대 둘러본 양반부락이 셋이다. 하나는 청송심씨부락인 충남 공주군 의당면 율정리이고 하나는 만경노씨네의 부락인 공주군 오성면 반촌리이고 하나는 파평윤씨네 부락인 논산군 노성면 교촌리이다.
때는 마침 시제때라 선조중에 유명하였던 중시조의 묘제사에는 원근(遠近)에 사는 많은 동족들이 모여 며칠간 장날과도 같고 큰 잔치와도 같이 사람들이 모였었다. 이러한 동족들이 같은 충청도 같은 군에 있으면서도 가가례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묘제사도 진행의 절차와 상차림 등이 약간씩 달랐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어떤 동족은 음식치례를 많이하고 어떤 성씨네는 묘치장을 잘하는 등 자기성씨를 자랑하는 방법들이 달랐다.
청송심씨의 경우 음식치례가 대단한 집안이었다. 옛날과 많이 없어지고 겨우 옛풍치만을 유지하지만 묘 앞에 큰 책상만한 돌상위에 차려놓은 음식은 거의 60cm를 넘을 정도로 접시마다 고인 각가지 과일ㆍ열매ㆍ다식ㆍ탕ㆍ고기ㆍ떡 등이 상을 넘쳐흐르는듯 하다.
그런가하면 파평윤씨네는 음식보다 묘 치장을 잘해놓았다. 양지바른 비스듬한 언덕위에 나란히 자리잡은 묘도 아담하려니와 그 앞과 옆에 놓인 비상석(碑床錫) 향로석(香爐石) 장명등(長明燈) 망주석(望拄石) 동자석(童子石) 등 기기묘묘하게 차려놓은 것이 예쁘고 아담하게 보였다.
이와는 달리 반촌리의 만경허씨네는 음식도 대담치 않았고 묘도 별로 신통하지 않았으나 이곳은 항기(行忌)가 대단한 곳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모여들은 동족원이 3백명은 되어보인다. 높지않은 선산에는 묘가 약 20개가 모여있었고 좀 떨어진 곳까지 하면 그것의 배가 되어보인다. 비탈의 경사가 완만한 잔디 위에 흰두루마기에 갓을 쓴 노인도 많지만 30대 20대 젊은사람도 많았다. 종손 문장 유사 등 문중의 어른들이 모여 모여든 문중원을 직계 방계별로 점검하더니 각묘에 7~8명씩을 배치한다. 첫잔을 올리는 초헌관(初獻官)은 직계종손이 하지만 나머지 아헌관(亞獻官) 등을 배정하는 것이다.
모든 배치가 끝나고 제물이 분배되어 모두 정돈을 하는 것이 볼만하다. 가을에 푸른하늘과 푸르고 누래지는 나무와 잔디위에 빨갛고 노란색이 뒤섞인 제물에 흰색을 입은 사람들이 언덕위에 꽉차있다. 참으로 보기좋은 경치였다. 준비가 모두 끝난것을 보고 종손이 제일 윗대 묘 앞에서 큰목소리로 부르는 홀기에 맞추어 첫잔을 올리고 다음대인 아랫 묘로 내려와 초헌을 하니 윗대에서는 아헌(亞獻)이 잔을 올린다. 음율에 맞추어 부르는 홀기가 마치 합창단이 코라스를 하는 것과 같고 멀리 매아리쳐 울려퍼지면서 잔을 올리고 절을 하고 하는 편이 있으면 다른 줄에서는 일어섰다 절을 한다. 마치 오페라를 보는 것과도 같다. 이렇게 무대가 야외이고 흰색의 대중이 동원된 오페라의 조명은 밝은 햇살이다. 10월 높푸른 하늘에 한국에서밖에 볼수없는 아름다운 경치리라. 제사가 끝나니 모두 한군데 모여서 음복을 하고 노인들이 시제의 소감을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하면 젊은이들은 달갑게 그 충언을 듣는다. 왔는 사람의 수대로 모든 음식을 고루 나누어 각기 집으로 간다. 돌아가는 젊은이들을 보니 발걸음도 씩씩하려니와 그들은 시제를 충실히 지내는 것을 가장 자랑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우리들이 잘살기 위한 목적이 선조를 잘모시기 위함이라 말한다. 만경 허씨의 경우 대스러운 양반이 아니였다. 오히려 이런 성씨들이 대성보다 더 지성껏 제사를 받든다. 말하자면 모든 성씨들이 다 양반이 되어야 민주주의가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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