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나 사회가 성장하는 과정에 반드시 갈등이 있게 마련이라고 했다. 갈등을 경험하지 못하는 인간은 죽은 인간이며 갈등을 내포하지 않은 사회는 침체된 사회아다. 그래서 교회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는것이다. 그러나 갈등이 반드시 좋은결과를 자아내지는 않는다.
갈등이 생기면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고 서로 대립상태에 빠져 논쟁과 투쟁이 일어나고 자칫하면 서로 원수가 되는수도 있는 것이다. 미움을 사게하는 갈등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폐쇄하게 하고 사회를 폐쇄된 사회로 만들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갈등이 성장의 요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지식과 지혜와 덕행이 총동원되어야 하고 아량과 겸손, 사랑과 인내심을 각자는 발휘해야 하는것이다. 갈등의 원인을 남에게 미루기 전에 각자는 자신이 책임을 질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갈등 해소
그런데 갈등이 일어났을때 피해야할 태도는 성급함이다. 대다수의 갈등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갈등에 대한 자연적인 해결책이 나타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회가 갈등으로 인해서 혼란하고 불미스럽다고 교회를 이탈한다면 그 교회는 발전할수 있는 가능성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러나 신자들이 교회를 이탈한다고 해서 그 책임을 신자들에게만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생존하기 위해 없을 수 없는 갈등이기는 하나 그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면 교회안의 신도들은 무관심으로 흘러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관심은 사실상 냉담의 지름길인 것이다. 현대에 와서 전세계적으로 교회를 이탈하는 자가 많아지는 원인중의 하나는 바로 갈등을 적극적인 자세로 해결하지 못한데 있지않는가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모두가 자기 의견만을 주장하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거기에는 사랑도 순명도 없고 따라서 신앙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등을 될 수 있는대로 빨리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갈등의 해결이 전혀 불가능하게 보일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중재자 개입해야
이러한 현상은 가끔 볼 수 있는 것인데 그 요인들을 살펴보면 ①한쪽편에서 상대방을 악의없이 오해할때라던가 ②쌍방의 의견이나 사고방식이 다르다던가 ③쌍방이 받은 정보가 틀릭때 또는 ④쌍방의 이해관계가 팽팽하게 맞설때 등이다.
이때에는 중재자를 개입시키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이 중재자는 개인이거나 단체일 수 있는데 그는 판단하는 역할보다도 협상하는 역할을 갖게된다. 그는 재판관이 아니라 사자이다. 그런데 중재자가 해야 할 일을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논의되는 문제를 객관화하는 것-주관적인 요소를 지적해주면서 하나하나 제거하는 작업을 말하는 것이다. ②중립적인 요소를 개입시키는 것-현재 다투고있는 문제보다 높은 차원의 무엇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③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④쌍방의 오해를 풀어주는 것이다. 그런제 문제는 쌍방의 이해관계가 팽팽하게 맞설 때이다. 이때에는 쌍방이 노력과 아량과 양보심에 호소하면서 사적인 것보다 공적인 것을 추구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누구를 중재자로…
그러면 누가 이 중재자의 역을 맡을것이며 어떻게 중재자를 선택할 것인가? 경우에 따라 중재자는 갈등이 발생된 단체안에서나 밖에서 선택할 수 있으나 반드시 충돌된 쌍방의 합의하에 선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실상은 충돌된 쌍방이 중재자의 개입을 인정할 때에는 벌써 갈등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여기에서 한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번 심포지움에서 갈등에 대해서 연구할때 한 신학자가 갈등이란 개인과 사회의 성장과정에서 반드시 발생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갈등 그 자체는 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갈등은 원죄의 결과라고 말한바 있었다. 그래서 원죄론을 두고 론쟁이 벌어졌었다. 그러나 이번 심포지움이 원죄를 논하기 위한 연구회가 아니고 갈등을 심리와 사회의 현상으로 보고 거기에 따르는 교회안에서의 대화에 임할 자세를 연구하는데 불과하다고 결론지음으로써 토론을 계속하였었다. 그런데 필자의 의견으로는 갈등 자체는 원죄라고 생각치 않고 갈등은 원죄를 지은 인간이 생산하는 결과로 생각하고 싶다. 따라서 갈등의 원인을 하느님에게도 남에게도 미룰 수 없는 인간 개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