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 보다 사실은 더 어려운 일이고 납득하기도 어렵다. 인간사회에서 무엇인가를 잘하고 나면 으례 그 보상이나 칭찬을 기다리게 마련이고 사실 현대 심리학에서도 보상은 선행을 하는 동기유발로서 아동교육에서는 어릴 때부터 잘한데 대한 칭찬이나 보상을 꼭 하라는 것이 교육학자들이 부모에게 하는 권고이다.
선행을 하고도 사람들한테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선행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조건반사적인 교육법으로 반드시 보상이 뒤따라야할 만큼 인간사회는 유치한 윤리생활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사회의 윤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보상만으로 선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선행에는 그 뒤에 숨어있는 보상 없는 공로자가 있다.
자녀들이 잘해서 상을 타는 그 뒤에는 부모님들의 드러나지 않는 숨은 공로가 있고,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그 뒤에는 남에게 드러나지 않는 선생님의 지도가 있다.
예수께서 오늘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숨은 공로를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보상감으로 지적하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선행이란 말은 종교적인 의무완수를 말한다. 그것은 세 가지: 자선을 베푸는 일, 기도하는 일, 단식재를 지키는 일이다.
이 세 가지는 유대아인들이 종교적인 신심을 발휘하는 선행으로서 옛 부터 지켜오던 의무였다. 유대아인들의 덕성의 단계는 율법을 틀림없이 지키는 일이 기초적인 단계였고 그다음 자선, 기도, 단식은 율법을 넘어선 한 단계위의 선행이었다. 그러니 특별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었고 율법을 잘못 지킨데 대한 보속도 되었고 마지막 심판 때 여가의 공로로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니 보상을 기대하는 심정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인간은 요사스러운 것 이어서 선행을 내세우면서 가끔 본말을 뒤엎는 일을 저지른다. 선행에 대한 보상기대를 순서를 뒤집어서 보상받기 위한 선행에 눈독을 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께서는 나쁘다고 경계하시는 것이다.
구약성서에는 자선에 대한 아름다운 교훈들이 많다.「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것보다는 자선을 베푸는 것이 더 낫다」(토비12.8),「자선 베풀기를 게을리 하지말라」(집회 7,10)등. 그러나 이렇듯 아름다운 선행도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면 위선으로 빠진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적대당파인 사두가이파 사람들을 위선자들이라고 몰아세웠다.
위선자라는 말은 그리스어 원문에서 「…노릇을 해 보이는 자」라는 뜻이다. 선행하는 사람노릇을 하는 자이다. 위선자들의 자선은 찬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며 선행자 노릇을 한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의 말씀이라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낫다」라는 명언을 들려주었지만 오늘 성경에서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선행을 하고도 인정받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심금을 울리는 명언중의 명언이다.
우리에게 하느님과 은밀한 대화가 필요하다면 남모르게 선행을 하는 일이며 은밀하게 기도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윙크로 대답하실 것이다. 사도교회는 외부로부터 핍박을 받으며 교우들이 서로 도와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 도움은 무엇을 바라며 하는 선행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선행을 하면서 오로지 하느님과의 은밀한 대화가 필요하였다.
그 후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 적선정신을 구체적으로 가르치면서 적선의 종류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정신적인 도움을 베푸는 신애긍(神哀矜)과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형애긍(形哀矜)으로 구별하였다.
그리고 애긍의 방법을 각각7가지로 제시하여 실천하였다: 신애긍은 ①우몽한 사람을 가르치는 훈몽(訓蒙), ②잘못하는 사람을 훈고하는 훈우(訓愚), ③난처한 사람을 위로하는 위환(慰愚), ④걱정을 덜어주는 위수(慰愁), ⑤너그럽게 용서하는 관서(寬恕), ⑥능욕을 참아주는 인모(忍侮), ⑦원수를 사랑하는 애구(愛仇)이며, 형애긍은 ①주린 이를 먹이는 식기(食飢), ②목마른 이를 마시게 하는 음갈(飮渴), ③헐벗은 이를 입히는 의탈(衣脫), ④병든이와 옥살이 하는 이를 돌보는 고병수(顧病囚), ⑤나그네를 재워주는 숙려(宿旅), ⑥포로를 속량하는 속로(贖虜), ⑦죽은 이를 묻어주는 장사(葬死)이다.
이상 빈자구휼(貧者救恤)의 항목들은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설교하신 선행실천의 가르침을 한데 모은 것들이다. 이 실천사항들은 하느님의 사랑이 참으로 세상에 드러나는 일이기에 예수께서는 자선에 대한 교훈을 힘주어 말씀하셨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