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유학을 하며 마닐라한인교회를 돌보시던 김준호 신부님이 부친의 병환으로 내가 근무하는 전북대학병원에 오신 적이 있다. 그때 신부님과 잠깐 이야기를 하던 중 전주교구 성령팀이 마닐라를 한번 방문해 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쁜 일로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7월 중순경 김 신부님이 8월말로 마닐라교회를 그만두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교구 성령봉사회에서 마닐라한인교회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잘못 전해져 있었다. 신부님과 그전에 나눈 대화도 있고 해서 급하게 준비를 했다. 결국 8명의 인원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출발하였다.
비행기는 정시에 김포공항을 이륙했는데 그렇게도 세차게 쏟아지던 비는 어느새 말끔히 개이고 맑은 창공으로 비행기는 솟아올랐다. 1만5천 피트 상공에서도 가정집의 거실과 같은 안락한 상태를 유지해 주었다. 내가 탑승한 항공편은 운행이 불규칙해서 밤 10시30분에 도착할 비행기가 새벽 2~3시경에 도착하는 경우가 예사라고 했다. 그러나 그날은 정시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마중 나온 형제분들이 가정에 분산되어 민박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는데 늦게 도착하면 직장인인 그분들이 고생하리라 걱정을 하던 차에 정시도착은 무척 다행한 일이었다. 교포들은 이시기에 보통 고국방문과 휴가를 가는 때여서 인원이 제대로 모일까 많은 걱정을 했다. 신부님께서도 예상인원을 약 30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첫날 50여명이 참석했다. 안수식과 파견미사까지 6일간의 피정은 강행군속에 진행되었으나 그 인원은 줄지 않았다. 매일 가르침 후 약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고 기도하고 나면 11시 30분~12시가 다 되었다. 높은 교육수준의 형제자매들, 현실생활에 큰 어려움 없이 자유분방한 그 분들임에도 겸손 되게 끝까지 계속해서 참여했다.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는 형제자매들의 모습이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이렇게 어렵게 시작했던 세미나는 안수식과 파견미사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보이지 않으나 늘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도움으로 「우리들도 해냈다」는 긍지와 기쁨 속에 세미나는 막을 내렸다.
본당신부님께서도 특수한 여건 속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졌다는 자체만으로 다행이라면서 기뻐하셨다. 일주일 동안 난생 처음 만난 그분들과 우리들 사이에는 어느덧 따뜻한 그리스도의 형제적 사랑과 정이 들었다. 그래선지 떠날 때는 서로 헤어지지 말고 이곳에서 같이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께서는 우리들이 낮에 쉬는 동안과 마지막 체류2일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최대한 봉사를 해 주셨다. 그러한 신부님의 참모습에 우리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손수 장거리를 운전하고, 차편을 마련하고, 쇼핑을 하는데 데리고 다니며, 마닐라의 명소는 빼놓지 않고 우리들을 안내하셨다. 롤롬보이, 톤도, 마더데레사 수녀원, 말라카냥 궁, 리잘 박물관, 푸엘토아쥴 등 8명의 식구에 온갖 정성을 다하신 그 모습은 우리들 뇌리에서 오래도록 잊지 못 할 것이다.
우리들의 방문한 기간은 필리핀의 우기와 태풍의 시기였기 때문에 예측을 불허하는 폭풍과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신묘하게도 우리들이 행차할 때는 비는 개이고 창공은 맑았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실감하는 일이었다.
그중 가장 감격스러웠던 일은 세미나의 마지막 파견미사 겸 주일미사를 끝마치고 오후 주일미사를 방문할 때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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